[KOF]
KOF97 ~ 끝없는 여름의 마지막에 ~ (0)
딱히 엄청 열심히 번역할 건 아니고
하권구했슴당
비. 수막이 쳐진 아스팔트는 둔한 빛을 발하는 거울처럼 보였다.
상을 일그러트리는 그 거울 위로, 점점이 가로등 불빛이 비치고 있었다.
미적지근한 비였다.
때때로 자동차 헤드라이트가 배기음을 그리며 지나가는 인적 없는 넓은 도로 위로, 몇만의 빛방울이 산산이 부서졌다.
대도시가 토해내는 독기를 잔뜩 들이켜, 무겁고 미지근하고 끈적하게 침전된 중유마냥 새카만 비가 그칠 줄 모르고 내리 쏟아졌다.
귀에 들러붙을 정도로 시끄러운 빗속을, 남자는 일절 개의치 않고 우산 하나 없이 걸었다.
스무살 남짓으로 보이는 그 남자, 아니, 그 청년의 머리카락은 생생한 피처럼 붉게 물들어 있었다. 이글거리는 안광이 깃든 얼굴은 밀랍처럼 새파랬고, 단정한 외모에 감히 범접하기 힘든 처참한 분위기가 떠돌았다.
키는 대략 180센티 정도. 검은 쟈켓과, 기장이 긴 드레스 셔츠를 입은 탄탄하고 넓은 상체, 슬림한 하반신엔 붉은 면바지를 입고 있었다.
기이한 풍채였다.
그 어떤 인파 속에서도 대번에 눈에 띌 법한 외모이기도 했으나, 청년을 돋보이게 하는 것은 그 내면에서 스며나오는 광기였다. 보는 인간을 침음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분위기. 이 청년을 단적으로 표현하기에 가장 걸맞는 말, 그것은 확실하게 광기였다.
도로를 오가는 자동차 헤드라이트가 청년의 옆모습을 일순 비췄다. 그는 그저 앞을 바라보며, 으스스한 여름밤 빗속을 걷고 있었다.
"후후후…."
불현듯, 빗소리에 섞여 여자의 웃음 소리가 들렸다.
"………."
청년은 눈을 가늘게 뜨고, 가로등이 도보에 드리우는 빛의 고리 속에 멈춰섰다.
"야가미…. 저기, 야가미 이오리? 후훗……."
청년의 이름을 부르는 낮고 요염한 그 목소리는 그의 귓가에서 들려왔다.
젖은 쟈켓 가슴께를 가는 손이 더듬었다. 새빨간 매니큐어가 장미꽃잎처럼 손끝을 수놓은, 마른 여자의 팔이었다.
"이오리…. 당신 왜 이런 곳에 있어?"
야가미 이오리란 이름의 청년을 등뒤에서 끌어안은 것은, 농염한 금발을 늘어트린 푸른 눈동자의 미녀였다. 죽은 자를 연상시키는 창백한 피부를 아낌없이 드러내며, 얼어붙은 이오리의 뺨을 향해 손을 뻗었다.
"쿠사나기 쿄는 아직 살아 있어. 그런데 당신은 여기서 뭘하는 거야?"
블론드의 여성은 이오리의 귓가에 붉은 입술을 갖다대며, 음탕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어두운 밤, 비내리는 도로에 전라의 여성이 나타났다는 기이함마저 뇌리에서 깔끔히 날려버리는, 남자를 취하게 하는 목소리였다.
하지만 이오리는 어디까지나 무표정했다. 작게 시선을 옮겨, 제 발치를 바라보았다.
거기에도 역시 알몸의 여자가 있었다.
농염한 흑갈색 머리카락을 짧게 자른 여자가 야유를 띄며, 이오리의 다리에 매달려 있었다.
"쿠사나기 쿄를 죽이는 게 아니었어?"
힐난하는 듯한 어조에는 역시 이오리에 대한 비아냥이 담겨 있는 듯 했다.
"당신의 증오는 겨우 그 정도?"
"네가 쿠사나기 쿄를 죽이는 건 역시 무리였어?"
두 사람의 여자는 이오리를 조소하며, 그 풍만한 몸을 틀었다. 겉보기엔 인간 여자였으나, 그 모습은 어딘지 파충류를 연상시키는 데가 있었다.
"……."
변함없이 아무말 없이 선 이오리의 눈동자에 한층 더 진한 광기가 서렸다. 그가 오른 팔을 쳐들었다. 블론드의 여성을 뿌리치듯, 그 팔로 옆을 베어가른다.
직격당하면 여자 한둘 쯤 가볍게 날아가버릴 주먹이었으나, 비로 흠뻑 젖은 도로 위를 구르는 여자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저 이오리의 곁에 선 가로등의 몸통이 커다랗게 패여들어갈 뿐이었다. 문득 바라보자, 발치에 있던 여자의 모습도 홀연히 사라져 있었다.
그 여자들은 환상이었던 걸까.
이오리는 환상을 향해 흉기와도 같은 팔을 휘두른 것일까.
그건 아무래도 좋은 일이었다.
지금의 이오리에게 있어선.
"괴물의 말 따위, 새삼 들을 것도 없다."
비 때문에 무겁게 젖은 앞머리칼을 쓸어 올리며, 이오리는 중얼거렸다.
목소리의 떨림을 억지로 집어 삼키는, 그런 울림이 느껴졌다.
이오리는 가로등에 기대어 고개를 떨궜다.
"큭… 쿨럭…."
이오리의 어깨가 크게 흔들렸다. 격한 기침과 함께 그의 발치로 뚝뚝 핏방울이 흘러떨어졌다.
피를 토했다.
"…쿄."
아까의 주먹 때문일까, 가로등의 빛이 약하게 깜빡이기 시작했다.
이오리는 입가를 더럽히는 피를 닦지조차 않고, 비구름으로 뒤덮인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내 피가 말라붙기 전에… 쿄, 네 놈의 피를 한방울도 남김없이 이 땅에 뿌려주마…. 죽여주마."
악몽처럼 새카만 비구름이 무슨 변덕을 부린 건지 약간 갈라지더니, 그 틈새로 선홍색 활을 연상시키는 초승달이 모습을 보였다.
그 붉은 빛을 바라보며 이오리는 으르렁거렸다.
"나는 이제 네놈을 죽이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의 이 피보다 증오스럽구나! 그 얼굴도, 모습도, 목소리도, 그 존재자체가 증오스럽다! 쿠사나기 쿄!!"
피를 토하며 부르짖는 이오리의 입가에는 어느샌가 광기어린 웃음이 들러붙어 있었다.
그의 몸을 지탱하던 오른손 손끝이 가로등 몸체를 파고들어갔다. 무시무시한 힘이었다.
"네놈의 목숨 말곤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죽여주마, 쿄!!"
이오리는 문자그대로 새빨간 초승달처럼 입술을 끌어 올리며, 달을 향해 드높이 웃음을 터트렸다.
단조로운 빗소리를 휘갈키며 멀리 울러퍼지는 그 웃음은, 헝용할 수 없는 허무함과 슬픔이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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