アバタ-ルチュ-ナ-(3)クォンタムデビルサ-ガ 五代ゆう 저 |
* 3권의 근토편의 종장 언저리입니다.
* 연옥과 낙원의 중층, 이야기적으로는 과거편. 여전히 초벌로 막나감.
제 3장
후작]
그리하여 강철 같은 말투로
자연은 그 아이에게 말을 건다.
그 명령으로 우리를 범죄로 이끄는,
그 달콤한 행위를―…,
어리석은 자만이 심판 받고,
무죄이길 거부하는 그 행위를―…,
대체 뭐라 부르리.
얀 슈반크 마이어『루나시』
1
「<EGG> 내부에 정체 불명의 리소스 소비?」
마담 마르고 큐베이는 의아한 듯 눈썹을 지푸렸다.
「갑자기 할 얘기가 있다면서 우릴 불러 들인게 그 이야기 때문? 신 미나세. 유감스럽지만 우리는 컴퓨터의 구조 그 자체의 해석에 대해서는 비전문가야. 당신이 불러야할 것은 우리가 아니라 시스템부의 책임자가 아닐련지. 아니면 새큐리티 관련 부서라던가.」
「저도 처음에는 그리 생각했습니다만,」
<EGG>의 중추부, <테크노 샤먼> 관련 정보와 어린 여신의 동향과 관련된 모든 것이 수집, 분석되는 방이였다.
시설 내에서도 가장 중요시되는 이 방에서, 신은 체류붕인 귀빈, 마담 큐베이와 그 동행자들을 불러 모았다. 엔젤은 언제나처럼 양어머니의 곁에 조용히 대기해 있었고, 백 대령은 분노한 듯 입술을 튼채 팔짱을 끼고 있었다.
이제까지 부외자로서 조심스레 구석에 대기해 있거나, 별로 들어서지도 않았던 이 방 안에서, 신은 당연하다는 듯 주인으로서 군림하고 있었다.
아무도 불평하지 않았다.
텔레파스에 의한 접속 실험이 무참한 실패로 끝나고 나서, 예전 이 스페이스의 제왕이였던 그레이즈너 박사는 개인실 밖으로 한발짝도 나오지 않은 상태였고, 요 며칠간 카페테리아나 각 에어리어의 통로인 공유 공간에조차 모습을 보인적이 없었다. 그 이름은 암묵적인 금구가 되어, 의식적으로 스탭들 사이에서 사라져 갔다. 설령 그 이름을 소리죽여 소문처럼 떠든다 해도.
이미 권력의 흐름이 누구를 향하고 있는지는 명백했으며, 전 그레이즈너 파였던 스텝은 이전보다 두드러지게 신을 위해 일하며, 여신의 새로운 사제에 대한 충성심을 과시하려 하고 있었다.
「뭐, 이걸 봐 주십시오. 퓌리, 폴더 W-07에서 117 스크린샷 샘플을 정면 스크린에 표시. 나머지도 바로 불러 들일 수 있도록, 대기.」
「예스, 마스터.」
그 즉시 응한 여성 스탭의 목소리에도 공포가 담겨져 있었다. 하얀 손이 콘솔 위를 재빠르게 나돌더니, 이어 라이트가 꺼져 있던 정면 대형 스크린 위로 세세하게 구분된 대량의 화상 샘플이 줄지어 늘어섰다.
「뭐지, 이건.」
이른 아침부터 불리워져 나온데다, 답답한 <EGG> 내부의 생활에 실로 질색하고 있던 백 대령이 눈을 깜빡이며, 비볐다.
신은 한쪽 입술 끝을 들어, 근처의 콘솔을 직접 조작, 섬네일 한 장을 확대해 화면 중앙에 표시했다.
「전장이잖아?!」
백대령은 큰 소리를 질렀다. 뿌리부터 군인인 그에게, 겨우 직접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 나왔다는 안도감이 담긴 목소리였다.
「하지만 왜 우리들에게 이걸 보여줄 필요가 있지? 원인 불명의 리소스 소비라는 것은 이것인가?」
다시 목소리를 떨구며, 미심쩍은 듯 신을 바라본다. 원래부터 대령은 이 차가운 미소를 띄고 있는 젊은 디자이너스 차일드 청년에게 불쾌함을 감추지 않았다. 뿌리부터 구식인 마초주의자인 그에게, 여성적이기까지한 단정한 생김에 나긋나긋한 신의 몸은 깡그리 유약과 태만의 증거와도 같았다. 그 공손하면서도, 교묘하게 상대의 신경을 거스르는 말투도, 군인 기질이 골수까지 스민 백 대령의 마음에는 들지 않았겠지.
「그렇습니다.」
신은 대령의 으름장같은 시선에도 태연했다.
「이것은 단순한 화상이 아닙니다. 현재 <EGG>의 데이터 플로우 내에서 행해지고 있는 막대한 숫자의 가상현실 세계의 일부를 때내어 온 것입니다.」
「가상 현실?」
마담 큐베이가 소녀처럼 고개를 갸웃했다.
「무슨 뜻이지? 저희들 자신을 시뮬레이트하는 가상 현실과는 별개로, 또다른 뭔가를 시뮬레이트 하는게 있단 소리?」
「얼마전 텔레파스를 이용한 접속 실험이 있은 후, 2시간 뒤부터 리소스 감시 시스템이 용도 불명의 커다란 리소스 소비를 경고해 왔습니다.」
화상 아래로, 리소스 소비량의 추이를 표시하는 원그래프와 막대 그래프가 나타났다. 일시가 새로워질수록 용도 불명의 리소스 소비량은 크게 늘어가더니, 이어 시스템 전체 리소스의 30% 전후에서 정지했다.
30%라고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통상의 슈퍼 컴퓨터를 <EGG>의 플로어 전체에 꽉 들여차 세워둔다 해도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는 거대한 연산력이다. 그만한 리소스를 소비해가며, 대체 누가 뭘 하고 있단 말일까.
「설마 스파이가 침입한건 아니겠지?」
「물론 처음 의심시 된 것은 누군가에 의한 해킹 가능성이였습니다.」
입을 좀 더 벌리려하는 대령을 가로 막듯, 신이 말을 이었다.
「허나, 통상의 컴퓨터와는 설계 사상, 기반 전산 시스템 및 재질부터가 완전히 별개인 <EGG>를 외부에서 해킹할 수 있는 시스템이 이 세상에 존재할리 없지요. 또한 <여신>이 자기 자신의 두뇌이며, 사고기관인 <EGG>에 적의 침입을 쉬이 허락할 가능성은 전무나 다름없습니다. 그런게 가능하다면, 옛저녁에 우리들이 했겠지요.」
마담의 배후에 서 있던 엔젤이 붉은 입술을 뒤틀었다. 대령은 불만스러운 듯 침묵했다.
마담 큐베이는 기이하다는 듯이,
「하지만 그럼 그 말고 무슨 가능성이 남아 있다는 걸까. <EGG>의 스탭 내부에 스파이가 있다고? 아아, 아니. 아니, 설마…….」
「그 설마입니다, 마담.」
신은 스탭에게 신호해, 그래프를 지운 다음 리소스 소비가 시작된 경로와 위치를 시간 순서대로 정리한 도표를 열었다.
망처럼 펼쳐진 거대 컴퓨터, <EGG>의 중심, <여신>이 있는 위치에서부터 소비가 시작되어 확대되어 갔다.
「소비하고 있는 것은 세라피타란거네. 어쩜.」
말과는 달리, 마담 큐베이는 별반 놀라지 않는 모양이였다. 장난꾸러기 손녀의 장난을 한탄하듯 탄식하고서 고개를 지은 뒤, 신을 올려다본다.
「그래서. 그 섬네일 군을 채취했다는 것은, 그 리소스 소비를 해석했단 의미지요? <그녀>가 당신에게 말해준 걸까?」
「아뇨. 유감이라고 해야할진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그녀는 요컨대, 자신의 생각에 열중해 있어서 타인이 자신의 사고를 엿보는 것을 신경 쓰지 않는 것 뿐인 모양입니다. 뭐, 지금까지도 신경쓰고 있는 것 같진 않았지만요. 지금도 프로그램적인 해석과, 축적되어있던 막대한 시뮬레이션 결과를 그대로 로그로서 추출해 내는 것이 고작이였습니다.」
막대한 수의 섬네일을 스크롤한다.
「시뮬레이션 총수는 현재 1억 6788회. 극히 짧은, 수분에서 수 일, 수년 단위에서 종료된 것은 횟수에 넣지 않았습니다. 적어도 가상현실 내에서 10년 이상 단위의 시간이 흐른 것을 기준으로 카운트 했습니다. 이미 1천년에 가까운 시간이 경과된 가상현실도 존재합니다.」
「1천년?」
대령이 가가 막힌 듯이 놀람을 표했다.
「바보같은 소릴. 그 실험 이후로 고작 이 삼일 밖에 지나지 않았어. 어떻게 그만한 시간이 흐를 수 있지?」
「컴퓨터 연산상의 시간은 현실 세계의 시간과 다릅니다, 대령.」
신이 딱하다는 듯한 시선을 보내는 것에, 대령이 이를 으득였다.
「통상의 컴퓨터래도 인간이 하면 우주가 소멸할 때까지 계산해도 끝나지 않을 연산을, <테크노 샤먼>은 단번에 끝낼 수 있습니다. 게다가 이곳 <EGG>는 지상 유일하게 <신(神)>과 이어진 장소이며, 정보의 아이인 <테크노 샤먼>의 두뇌이며 사고입니다. 그 사고 내에서 흐르는 시간이 보통 인간과 같을 리가 없지요.」
화면 일부가 전환되더니, 책을 앞에 두고 팔짱을 여성의 모습이 비쳐졌다. 선명한 핑크색 머리칼에 하얀 피부, 꽉 묶어올린 풍성한 웨이브 머리. <애너벨라>의 대리체 AI.
『정말~. 볼일이 있으면 좀 빨리 해 줘.』
짜증서린 말투와 자연스러운 표정은, 있을 수 없는 머리와 눈동자 색만 제외하면 완전히 인간 그 자체라봐도 무리가 아니였다.
『화장품 샘플이라면 거절이야. 권유도 질색이고. 나는 친구랑 만나기로 했단 말이야. 좀 전에 말했잖아, 앙케이트 같은거 해봤자 헛수고야. 어차피 개인 정보를 이용해 이쪽을 봉으로 삼을 생각이겠지? 그런거엔 안 속아.』
「뭐냐, 이건.」
「저『전장』 타입의 시뮬레이션보다 좀 더 평화로운 타입의 가상현실에서 데려온 AI입니다.」
화면 속 <애너벨라>는 짜증스러운 기색으로 테이블을 두드리며, 쉼없이 시계를 들여다본다.
「이 세계에서는 극히 평범한 시민으로서 가상 인격 멤버들이 친구 사이로 생활하고 있는 설정으로 스토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애너벨라>는 오늘은 친구 몇 명과 함께 봄옷과 화장품을 보러 나왔습니다.」
핑크색 머리칼의 AI가 될대로 대라는 듯 뭔가 대답하고 있다.
「그 약속 장소에 화장품 샘플 배포와 앙케이트 요원으로 위장한 프로그램을 투입해, <애너벨라>를 데려 왔습니다. 현재 보고 있는 것은 그 프로그램에 의해 행해지는 이 AI의 튜링 타입2 테스트입니다.」
튜링 테스트란 AI가 얼마나 인간과 유사한지, 얼마만큼 인간의 의식을 모방하고 있는지를 측정하는 테스트로서 그 원형은 전세기 중반 즈음부터 존재하고 있었다. 거기에 개량을 좀 더 가한 튜링 타입2 테스트를 완전히 패스한 AI는 현재까지 탄생한 적이 없었다.
초기의 튜링 테스트는 결국 AI가 인간을 얼마만큼 『잘』 모방할 수 있는지를 재는 것이 고작으로, AI가 진정으로 자율적으로 사고하고 있는지 없는지를 검증할 수는 없었다.
튜링 타입 2 테스트는 그 결점을 보완, 회답자가 얼마나 자율적으로 사고하고, 인간에 가까운 행동을 취하는지를 객관적으로 측정한다.
화면에는 앙케이트와 화장품 권유를 가장한 튜링 테스트가 진행되고 있었다.
언뜻 단순한 거리 앙케이트 조사지만, 그 질의 응답 속에는 AI의 인간서 지표를 마크하는 몇가지 요소가 숨겨져 있었다.
그것은 말뿐만이 아니라 그 모양새, 목소리의 울림, 표정, 바디 랭귀지까지 포함된다.
성가신 듯 앙케이트에 응하고 있던 <애너벨라>는 계속되는 질문에 지긋지긋해진 모양이였다.
『아아, 미안. 이제 시간 다 됐어.』
명백하게 안도한 모양새로,「애너벨라」AI가 급히 일어선다.
『이제 정말 가 봐야해. 세라나 다른 모두한테 혼날거야. 샘플은 받아갈게. 고마워. 가게에 들리면 당신네 메이커 이름, 말해 볼테니까. 그걸로 봐줘.』
책상 옆에 쌓여있던 예쁜색깔의 상자를 2개 정도 집어 든 다음, 애너벨라는 살짝 혀를 내민뒤「아, 잠깐」하고 당황의 소리를 내는 튜링 프로그램의 말에 귀조차 기울이지 않고 냉큼 방을 나간다. 의기양양히 샌드백을 휘두르며, 밝은색 스카프를 나부끼는 뒷모습은 씩씩한 인간 여성 그 자체였다.
마담 큐베이가 소리내 웃었다.
「생생한 AI네. 그럼 이건 역사상 처음으로 튜링Ⅱ 테스트를 통과한 AI가 나타났다는 뜻인가요?」
「나타났다는 말엔 어폐가 있습니다. 지금 것은 리얼 타임으로 10시간 정도 전에 채취한 샘플입니다. 그런데도 그 조차 튜링2 테스트를 코웃음 쳐 보일 정도입니다. 현재는 어떤 단계에 도달해 있을지. 예상조차 가지 않습니다.」
대령이 주전자처럼 숨을 내뿜으며 불만을 표명했다. 하지만 신은 그를 무시했다.
「<테크노 샤먼> 세라는 이러한 AI가 생활하는 1백년, 1천년 단위의 역사를 지닌 가상현실을 몇여개나 병행해서 연산하고 있으며, 지금도 그 숫자는 늘어가고 있습니다.」
중앙의 정지화면 주위에 표시된 섬네일이, 분열하듯 촤르륵 증식했다.
「가능성을 잃은 세계는 바로 소거되기 때문에, 서서히 시스템에 대한 부담은 줄어 현 상태로 진정되었습니다만 한때는 여신의 실험 때문에 자칫 메인 시스템 자체가 다운되기 직전까지 갔습니다.」
「그래서, 당신은 그 여신의 사고를 어떻게든 그럭저럭 엿볼수 있었다 그거군요.」
마담 큐베이가 말했다.
「네.」
신은 담담히 화면을 전환했다.
「록 된 <여신의 모형정원>― 일련의 가상현실 집단을 편의상 이렇게 총칭하기로 했습니다―에서, 펼쳐지고 있던 것은 실로 정밀한 가상 현실과 거기서 활동하는 가상인격의 무리였던 겁니다.」
화면 중앙의 정지화상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황폐한 도시를 전진하는 무장한 병사 집단 하나. 수는 4명. 도시에 녹아드는 위장용 전투 슈츠를 입고 좌우를 살피며 무너져 가는 빌딩의 계단을 신중하게 오르고 있었다.
선두에 있는 가는 몸의 병사는 핸드건을 쥐고, 벨트에 컴뱃 나이프를 장착하고 있었다. 깊숙이 눌러쓴 헬멧 때문에 얼굴은 잘 보이지 않는다. 그 뒤를 따르는 병사는 장신에 늠름하고, 무거워 보이는 중화기를 어깨에 짊어진채 허리에 수류탄을 쭉 매고 있다.
세 번째 병사는 여성인 모양이였다. 헬맷 아래로 꽉 묶어올린 머리칼은 선명한 핑크, 저격용 라이플을 어깨에 걸치고서 서브 머신건을 손에 쥐고 있다. 후미의 병사는 좀 더 가는 체구로 춤추는 것처럼 가벼운 발걸음으로, 앞에 있는 연장자 병사들이 없으면 금방이라도 앞으로 뛰쳐나가 버릴 듯한 생기를 발산하고 있었다.
무엇을 눈치챈 걸가. 세 번째 여성 병사가 짧은 경고의 외침을 흘렸다. 병사들은 일제히 무기를 고쳐쥔다. 계단을 다 오른 곳에 있는 덜렁거리는 문을 넘어 무장한 검은 전투복 집단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아군측의 선두에 선, 리더로 보이는 병사가 짧게 명령을 내린다. 병사들은 일제히 산개, 계단에 집중되는 적의 총격을 피했다. 세월이 지나 물러진 콘크리트가 구멍투성이가 되었다. 2번째에 있던 장신의 병사가 옆으로 뛰어 사격을 피하며, 허리에서 수루탄을 뽑아 입으로 핀을 뽑았다.
투척과 동시에 동료들에게 『엎드려.』하는 사인. 자신도 즉시 구멍투성이인 콘크리트 바닥에 바짝 엎드린다.
한 박자 뒤, 탁한 폭발음이 울러퍼졌다. 분진 구름 너머로 비명과 신음소리가 메아리친다. 피의 강이 흐르고, 계단 위에서 가늘고 붉은 줄기가 뚝뚝 흘러 떨어졌다. 날아간 한쪽 팔이 계단 층계참에 떨어졌다.
계단위에서 터진 폭풍을 맞아, 선두에 선 리더의 헬멧이 날아갔다. 은색. 다소 더러워지긴 했지만 갈고 닦은 두랄루민 같은 은색 머리칼과 은색 눈동자가 드려났다. 어딘지 여성적인 인상마저 주는, 단정한 청년의 얼굴.
뒤돌아 부하에게 뭔가를 고한다. 수류탄을 던진 장신의 병사는, 시끄럽다는 듯 옆을 보며 응했다. 그의 헬멧도, 옆으로 몸을 날렸을 때 날아갔었다. 흐르는 피와 같은 색채, 경고등의 색. 눈에 스밀 정도로 선명한 붉은 머리칼과 눈.
「<신>과 <카즈키>인가. 아니면 그를 모델로 한 AI.」
팔짱을 낀채, 이 장면을 들여다보고 있던 엔젤이 외마디 중얼거렸다.
「그렇습니다.」
신이 토해내듯 대답했다.
「나머지 두 사람은 시스템부 소속의 애너벨라 디 피어리와 지난날 죽은 텔레파스, 시에로 아론드라를 베이스로 한 존재 같습니다. 이 4구의 AI와 또 하나 다른 멤버를 더한 인물 구성으로한 시뮬레이트가, 온갖 장소와 패턴을 통해 반복되고 있습니다.」
「또 하나? 누구지?」
유혈의 전장을 고향이라도 보는 듯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던 대령이 이성을 되찾은 듯 신을 쏘아보았다. 신은 스크린을 바라보며 턱짓했다.
부대가 통로를 나아가자, 안쪽 문이 열리더니 누군가가 나왔다. 검은 머리칼을 짧게 깎은, 마른 몸매에, 전장에는 어울리지 않는 소녀였다. 나이는 고작 16, 17세.
『세라!』
맨 후미에 있던 작은 병사가, 환성을 올리며 뛰쳐나간다. 탁한 폭음의 잔향속에서도 그 목소리는 똑똑하게 귀에 들어왔다. 헬멧을 벗어던지고, 허리에 감고 있던 쟈켓을 버린 다음, 문을 연채로 서 있는 소녀에게 달려가는 하늘색 머리칼을 한 소년병의 뒷모습에서 화면이 정지되었다.
「이정도면 됐겠지요.」
신은 그렇게 말한뒤, 섬네일을 원래 상태로 되돌렸다. 포인트를 연이어 다른 섬네일로 이동시켜 가면서.
「여기에 표시되어 있는 것은 전장을 무대로한 가상 세계를 위주로 한 것입니다. 물론 달리도 여러 세계가 있습니다. 이들 전장에 관해선 뉴스 영상이나 픽션, 논 픽션, 세계 각지의 네트워크에서 리얼 타임으로 취득한 정보가 합성되어 있는 모양입니다. 나중에 구축된 시뮬레이트일수록 현실과의 근사성이 높아졌습니다. 지금 보여드린 것은 지금부터 약 2시간 정도 전에 언록된 가상세계의 일부입니다. 분명 지금 그녀가 연산중인 세계에서는 좀 더 리얼한 전투, 좀 더 리얼한 AI가 현실과 유사한 싸움을 거듭하고 있겠죠.」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지, 신 미나세.」
대령은 고압적으로 말했다. 가슴을 잔뜩 펼치고, 분노로 어깨를 떠는 모습은, 상대를 위협하기 위해 자세를 취하는 맹금류처럼 보였다. 상대의 높은 매부리코를 바라보며, 신은 미소했다.
「당신도 이곳에 군의 사자(使者)로 계신 이상, 이쪽으로서도 뭔가 성과를 보여 드리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해서요, 대령.」
「무슨 뜻이지.」
「이걸 봐주십시오.」
신은 가까이에 있던 단말을 켠 뒤, 대령을 손짓해 불렀다. 바로 응하려 했던 대령은 놀라 그런 자신을 깨닫고, 어깨를 다시 들쳐올린 다음 짐짓 발뒤꿈치를 울려가며 신의 손쪽을 향해 고개를 뻗었다.
모니터에는 간단한 와이어 플레임으로 형태자아진 도시의 구획도와 개성을 잘라낸, 그야말로 군복을 입은 마네킹같은 인체의 3D도가 회전하고 있었다.
「현재 최신인 전장형 시뮬레이션 가상현실과 거기에 거주하는 AI의 모형입니다. 인격적인 개성은 빠져 있습니다.」
「개성이 없어? 그건―….」
「나중에 얼마든지 원하는 인격을 이식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인격이라는 표현이 적절하지 않다면 기능이라고도 말할 수 있고요.」
그렇게 덧붙인뒤 신은 의미심장한 웃음을 대령에게 지어 보였다. 마치 공범자를 바라보는 듯한 시선에 백대령은 불쾌한 듯 미간을 찌푸렸지만, 이어 신이 하는 말의 의미를 깨닫고서 순간 기운이 난 듯 몸을 내밀었다.
「요컨대 높은 전투용 기능을 지닌 AI를 대량 생산할 수 있다는 소린가. 인격같은건 문제 없어. 병사들에겐 인격도, 감정도 필요 없어. 필요한건 순순히 명령을 따르는 것. 사태에 즉시 대처할 수 있는 신속하고 냉정한 판단력. 그리고 실행력이다. 그런 병사를 손에 넣을 수 있다는 소린가?」
「뭐, 그렇습니다. 실제 운용 방법은 시스템부나 대령의 부하분들과 협의해서 결행하게 됩니다만.」
신은 신중하게 대답했다.
「하지만, 어쨌든. 이 가상 세계의 <운영>이 가능한 것은 <EGG>뿐이라는 것을 먼저 지적해 두겠습니다. 인격적인 데이터를 쉐이프 업해도, 통상의 슈퍼 컴퓨터 몇 대 정도로는 <EGG> 산 AI 하나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펑크를 일으키게 됩니다. 동시에 다수의 AI를 움직이며, 그들이 존재하는 가상 세계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어디까지나 이 곳이 <EGG>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당신들의 백업에 대한 저희들의 보잘것없는 선물입니다. 부디 잊지 마시길.」
「말은 잘 하는군, 이 애송이.」
대령은 입술을 뒤틀었지만, 눈 앞에 펼쳐지고 있는 것에는 흥미가 가는 모양이였다.
이미 각양각색의 이용 방법이 머리에 떠오르고 있는 듯, 모니터를 바라보는 눈이 빛의 반사뿐만은 아닌 색으로 번들대고 있었다.
「알겠다. 우선 이… <모형정원>에 대해선 본국에 연락해 허가를 받은 다음 협의에 들어가지. 그럼 되겠나?」
「부디 좋으실대로. 그 세계는 당신들의 것입니다. 팬 백 대령.」
신은 가슴에 손을 얹고 공손히 예를 취했다. 대령은 또 다시 바보취급당한 기분에 당혹과 분노의 표정을 띄웠지만, 그 보다 새로이 그에게 주어진, 알기 쉬운『성과』에 정신이 쏠린 듯 했다. 방을 찾았을 때보다 훨씬 더 들뜬 얼굴을 한채 하사관의 이름을 큰소리로 부르며 큰 보폭으로 방을 나갔다.
「재밌는 아이라니깐.」
마담 큐베이가 입가에 손을 얹으며 웃었다.
「윌 도령도 참. 너무 기뻐하네. 그렇지. 분명 그도 본국으로 돌아가면 어려운 입장일거야. 이 <EGG> 하나를 유지하는 것은, 세계가 지금처럼 어렵지 않더라도 보통이 아닌 고생일테니까. 슬슬 국내에서도, 아무런 성과를 올리지 않는 <테크노 샤먼 계획>에 돈을 퍼붓는 우행을 관두고, 좀 더 현실적인 일에 여신을 돌려보자는 소리가 나오고 있어도 이상하지 않지.」
「시끄러운 개의 입을 막기 위해서는 뼈를 하나 던져 주면 됩니다.」
곁에서 듣고 있던 엔젤이 싸늘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것도 곁보기론 굉장히 맛있어 보이는, 살점이 달라붙어 있는 커다란 뼈를.」
「그러네. 나 당신이 굉장히 좋아질 것 같아, 신 미나세. 당신은 정말로 총명한 아이네.」
「칭찬해 주셔서 영광입니다.」
신은 다시 한 번 가슴에 손을 얹고, 고개를 숙였다.
고개를 들 때, 그 눈동자는 면도칼처럼 옅게 빛났지만, 내리깐 눈꺼풀 아래에 깃든 그 빛을 살피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돌연, 모니터 옆 인터컴이 울었다. 신은 손을 뻗어 스위치를 눌렀다.
「뭐야, 무슨 일이지?」
『수용자 002가 보호실을 빠져 나갔습니다.』
스피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동요하고 있었다.
『양자 이동을 반복하고 있는 듯, 좀처럼 파악이 되지 않습니다. 허나 이동 경로를 추적해 보는 한, 아무래도 <테크노 샤먼>이 있는 돔으로 향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어떻게 할까요.』
「또인가. 참나. 실성한 인간은 정말 끈질기다니깐.」
작게 혀를 찬 뒤 지시를 내리려던 신은, 문득 뭔가가 생각난 듯 갑자기 말을 잘랐다. 신은 드무리만큼 싸늘한 미소를 띄웠다.
「상관없어. 그대로 내버려둬. 가고 싶은데로 가게.」
『괜찮겠습니까? 위험하지는…….』
스피커 너머로 위축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돔에 도착해봤자 어차피 <여신>의 마음이 내키지 않으면 안으로 들어갈 수 없어. 게다가 들어가봤자 녀석정도의 능력은 세라피타에게 흠하나 입힐 수 없고. 원래부터 그녀와의 접촉을 통해 전염된 카피 같은 거니까.」
『하, 하지만 지금은 마침 미스터 K 호무라가 그녀와 세션 중입니다.』
「그러니까, 더 잘 됐잖아.」
극히 낮은 중얼거림은, 당황해하는 상대에겐 들리지 않은 모양이였다.
「어쨌든 나도 바로 돔 쪽으로 향하지. 추적하고 있는 경비원은 최종 목적지로 추정되는 <여신>의 돔 주위에 산개. 다만 002에게 손대지 말라고 해. 그래봬도 훌륭한 실험 샘플이야. 죽이는건 아까워.」
『허, 허나―….』
「지시는 내렸다. 지금부터 그쪽으로 가지. 이상이다.」
「무슨 일인가요. 무슨일이 생긴 모양인데.」
인터컴을 끈 신에게, 마담이 소녀처럼 고개를 갸웃해 보였다.
「뭐, 제 친구보다 먼저 세라피타와 접촉해, 이상해진 정신 분석가 남자 일 입니다.」
신은 작게 한숨 섞어, 고개를 저었다.
「우울 상태와 높은 폭력성이 있는 광란 상태를 반복하며 온갖 소리를 다 떠들어 대니, 기밀 유지를 위해서 감시하게 두고 있습니다만. 이게 어찌된 영문인지 세라피타와 마찬가지로 때때로 양자 점프를 하는 능력을 발휘합니다. 격발성의 광란 상태 한정입니다만.」
「어라, 어머나.」
「처음 두명은 의식 불명에 큐베이 증후군으로 사망했습니다만, 이 남자에게는 결정화의 징후가 있으면서도 그런 기묘한 능력까지 전염되어 있습니다. 대체 어떤 원리로 긜 된건지는 아직 연구중입니다만. 그렇기에 그런 귀중한 연구 샘플을, 멋대로 방을 나갔다는 이유만으로 죽일 수는 없습니다. 마담이라면 이해해 주시겠지요?」
「네에, 그러네. 맞아. 잘 아는군요.」
마담은 몇 번이고 고개를 끄덕였다.
「큐베이 증후군과 <신(神)>에 대한 그 본질이 아직 거의 해명되지 않은 것이 지금의 상태니까. 나 자신이 그걸 인정하는 건 분하지만 사실인걸. 그 어떤 사소한 단서라도 잃을 순 없지요.」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마담, 큐베이. 그럼 저는 소동을 수습하기 위해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마담은 여왕처럼 손을 흔들었다. 신은 재차 깊이 고개 숙여, 한발짝 물러난 곳에 서 있던 엔젤의 곁을 스쳐지나가려했다.
낮은 목소리가 말을 걸어왔다.
「그 가상 세계군의 중심 AI는 전부 <테크노 샤먼>이 맘에 들어하는 인물로 구성되어 있는 모양이더군.」
「그렇습니다만, 그게 무슨?」
갑작스럽게 걸려온 말에, 거추장스럽다는 듯 신은 뒤돌아보았다.
「저, 카즈키, 시에로, 애너벨라. 전부 이 시설에서 그녀와 접한 적 있는 인물들 뿐입니다. 각자를 원형으로 한 대리체 AI는 전부 그녀의 수중에 있고요. 그녀가 그 속에서, 좋아하는 인형을 선택하는게 뭔가 문제라도?」
「딱히. 하지만 굉장히 성격이 달라 보여서 말이야. 특히 너를 모델로한 AI는. 신 미나세.」
엔젤은 찌르는듯한 시선으로 신을 보고 있었다.
「마치 유아용 액션 영화의 히어로처럼. 혹은 로맨스 영화의 성실한 연인일려나? 현실에는 있을 수 없을 정도로 이상화된 남성의 인격으로 구성되어 있어. 도무지 네 자신의 성격을 반영했다고는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그건 <그녀>가 영화나 드라마를 참고로 세계를 만들어내, 그 시나리오에 따라 인물을 시뮬레이트 하고 있기 때문이겠지요.」
모욕으로도 받아들여질 말을, 신은 담백하게 흘려 넘겼다.
「결국에는 모형 정원입니다. 맘에 드는 인형을 가지고 노는, 소꿉놀이 같은거죠. 모델이 된 현실의 인물 같은건, 그녀의 의식에는 존재하지 않지요. 정말이지, 토악질이 나는 군요.」
「어라라라.」
마담 큐베이가 화사하게 웃었다.
「그런 식으로 말해선 안돼, 신 미나세. 엔젤. 여자아이란건 말야, 좋아하는 사람이 언제나 백마 탄 왕자님이길 바라는 거야. 분명 그건 세라피타도 마찬가지. 그런 뜻인거야. 그 아이는 그런 이상적인 왕자님을 신 미나세의 모습에 겹쳐 보고 있는 것 뿐. 그런 구석은 어린 아이네. 정말 귀여워.」
신은 입술을 틀어 올린 뒤, 어금니를 깨물었다.
「허나,」
엔젤이 추궁했다.
「다른 세 사람은 그렇다쳐도, 애너벨라 디 피어리의 AI 인격이 존재하는 이유는 납득이 안 가. 그녀는 시스템부의 일개 직원에 불과하고, 직접 <그녀>와 연관을 지닌 적도 몇 번 뿐일텐데. 이렇다할 접촉이 없던 상대를 왜 굳이 <테크노 샤먼>이 자기 놀이터에 넣은 거지?」
「글쎄요. 아마 외모가 마음에 든거겠죠, 제 때와 마찬가지로.」
흥미 없다는 듯 신은 내뱉은 뒤, 걸음을 재촉했다.
「어쨌든, 현재 가상세계 연산은 일부를 제외하고 전부 정지중입니다. 현재 가동중인 세계에 대해서는 아직 내부에 침입할 수 있는 수단을 찾지 못했습니다만, 언젠가 개입 경로를 찾을 수 있겠지요. 그때가지는 그녀 마음대로 놀게 내버려 둘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럼, 실례.」
신은 그대로 센터룸을 나갔다. 마담 큐베이와 엔젤은 시선을 맞춘뒤, 서로에게만 통하는 눈짓을 교환했다.
「뒤쫓을까요.」
낮은 목소리로 엔젤이 묻는다.
「그 남자 하나 정도라면 제 힘으로도 대강의 동향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만.」
「아니. 아직은 괜찮아.」
마담 큐베이는 어디까지나 느긋했다. 지팡이 손잡이에 두 손을 겹친채, 검은 안경으로 가려진 시선을 가만히 천장 모니터를 향해 기울인다.
「지금은 그 만이 <테크노 샤먼>에게 어느 정도 명령을 내릴 수 있단건 사실이니까.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건진 모르겠지만, 섯불리 손대서 괜한 경계심을 심어주는 것도 좋지 않아. 잠시동안은 가만히 내버려 두자. 이쪽도 경계를 늦추지 않는게 좋겠지만.」
「예스, 맘.」
엔젤은 지팡이 위의 마담의 손에 손을 겹치며, 가볍게 힘을 실었다. 마담 큐베이는 미소한뒤, 과거에는 천사였던 양자의 손을 살짝 치는 걸로 애정의 뜻을 표했다.
돌연 커다란 소리와 부르짖음이 들려와서, 카즈키는 깊은 교감 상태에서 깨어났다. 시각 아닌 시야를 채우고 있던 정숙한 암흑과 빛의 조각상이 조각조각 으깨진다. 찰나, 신체의 방향을 잃고, 머리나 손발이 어디에 있는지조차 가늠할 수 없게 된다. 느닷없이 뜯겨져 나간 공감(共感) 때문에 생긴 인식장해다. 거듭된 훈련 덕분에 감각을 잃었던 것은 불과 수 초 였지만, 그 수초 동안 습격자는 어느새 코 앞으로 육박해 있었다.
「위험해!」
눈 앞에 앉아 있던 세라를 향해 몸을 날린다.
세라는 언제나처럼, 감정을 읽을 수 없는 무표정한 얼굴로 카즈키에게 안겨, 바닥위를 굴렀다.
찰나 이어, 그녀가 있던 돌단 위로 긴급 상황시 문이나 융벽을 녹이는 대형 블로우 토치가 내리쳐졌다. 초고온의 불길에 즉시 돌단이 뜨겁게 열을 발하며 녹아간다.
「마녀는……, 죽여야만해.」
그 남자는 더러운 마대자루같이 헐렁헐렁한 옷을 입고 있었다. 그게 구속복이라는 것을 깨닫는데 잠시 시간이 걸렸다. 튼튼한 합성수지로 된 구석 벨트는 찢겨진채, 몸 여기저기에 늘어져 있었다. 홀쭉하고 야윈 얼굴은 창백하고, 재색의 기름기 없는 머리칼은 양 어깨위로 늘어져 있었다.
주렴처럼 드리워진 앞머리 사이로, 광기로 새하얗게 빛나는 눈동자와 송곳니처럼 드려나온 샛노란 치열이 보였다.
카즈키가 세라를 안은채 몸을 일으키자, 남자는 카즈키같은건 안중에도 없다는 듯 으르렁거리며 다시 세라를 향해 덤벼 들었다.
「마녀는 죽여야만 해!! 마녀를 불태워, 그 재를 물 위에 뿌려서 흔적조차 없이 멸하지 않으면!!」
남자의 입에서 침이 튀었다.
「신은 말하셨어.『점쟁이, 마법사, 주문을 읊는 자, 죽은이를 부르는 자, 죽은 자에게 말을 거는 자는 너희들 안에 없도록 하라.』고. 『하느님 보시기에 이는 옳지 않기 때문이기에, 주(主), 하느님께서는 그들을 당신의 앞에서 쫓아내시는 것』이라고!! 나는 신이 내린 명령을 다하겠어! 마녀는 죽어라!!」
수도꼭지같은 소리를 내는 푸른색 불꽃이 머리 위를 스친다. 종이 한 장 차이로 공격을 피하며, 카즈키는 자신이 미치광이와 대치하고 있다는 사실을 겨우 자각했다.
하지만, 어디지. 어디로 들어온 거지?
<테크노 샤먼>의 거처, 여신의 돔은 그 주인인 세라가 허락한 사람밖에 들어오지 못한다.
카즈키는 세라와 십여차례…. 그래, 15번째 세션 때문에 불리워져, 세라의 허락을 얻어 이 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돔의 문은 여신 세라가 맞이하려 하는 사람들에게만 열린다. 게다가, 애당초 이 <EGG> 대체 어디서 이런―….
혼란스러운 머리로 번뜩하고 빛이 튀었다. 전에 훑어보았던 세라와 그 전임자들의 세션 기록과, 그들의 말로. 그 중 하나, 제정신을 잃었으나 목숨을 건진 사람이 있었다. 분명 그 남자는―…….
부르짖으며, 남자가 토치를 내리친다. 가까스로 피했다. 머리털이 치직하고 탄내를 낸다. 세라는 표정 하나 달라지지 않았다. 작은 그 몸을 필사적으로 감싸 안으며, 카즈키는 열심히 머리를 굴렸다. 그리고, 마침내 떠올렸다.
그 남자다. 자기보다 2번째 전의 전임자. 고명한 정신 분석가였던 그 남자는, 세라와의 접촉 뒤 단 기간에 광기에 빠져 현재는 <EGG>내에서 치료라는 명목하에 감시를 당하며 연구 대상이 되어 있었다.
허나 그는 엄중하게 격리되어 <테크노 샤먼>이 있는 센터 구획에서 저멀리 떨어진 지하에 유폐되어 있을텐데. 그게 대체, 어째서 여기에.
블로우 토치가 굉음을 발하며 등을 스쳤다.
격통과 살이 타는 냄새에 카즈키는 짐승처럼 신음을 흘리며 몸을 젖혔다. 팔이 느슨해졌다. 꽉 안고 있던 세라의 몸이 돌바닥위로 굴러 떨어졌다.
「이 마녀년. 쬐그맣고 새카만, 검은 마녀 계집.」
불에 댄 어깨를 억누른 카즈키에겐 시선조차 주지 않고, 남자는 침을 흘리며 세라를 향해 다가간다. 카즈키는 신음소리를 내며 데굴 굴렀다. 전신이 마비되서, 신체의 오른쪽 절반이 움직이지 않았다.
겨우 움직이는 왼쪽 팔로 몸을 받쳐 고개를 들자, 남자는 커다랗게 눈을 뜬채로 가만히 앉아있는 세라의 머리위로 토치를 높이 쳐들고 있던 참이였다.
「그런 눈으로 보지마, 검은 마녀.『마법사 여자는 살려둬선 안된다.』 그래. 맞아.」
신음하듯 남자는 말했다.
「난 알아. 너는 마녀다. 그래, 악마다. 악마가 지상으로 내려보낸, 아니 네 그 존재자체가 악마다. 마녀년. 더러운 꼬마 마녀년. 죽은 이를 부르는 자, 또는 점치는 자는 반드시 죽여야만한다. 즉 돌로 땔려 죽여야한다. 재는 재로, 먼지는 먼지로. 죽은 자에게 말을 거는 여자는 돌로 때려 죽이리!!」
토치의 푸른 불꽃이 소녀의 머리 위로 내리 떨어진다.
머릿속에서, 그 암흑 속에서 푸르게 빛나는 조각상과, 눈앞에서 눈을 크게 뜨고 있는 소녀가 순간 겹쳐져 보였다.
「그녀에게…, 케.이에게―…, 손.대.지.마!」
머릿속이 새하애졌다.
카즈키는 뇌수가 튈 정도의 격노와 충동적 공격 의사가 자신의 머리 뚜껑을 깨부수고 흘러넘치는 것을 똑똑히 인식했다.
남자가 느닷없이 목을 움켜잡힌 것처럼 몸을 젖혔다.
토치가 돌 위를 구르더니, 안정 장치기 직덩헤 정지했다. 남자는 뒤로 쓰러져, 말도 채 나오지 않는 비명과 신음을 교대로 내지르더니 목을 긁으며 돌계단을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 보라색 입술에서 하얀 거품이 새어 나와, 더러운 턱을 타고 뚝뚝 흘러 떨어졌다.
「케이. 괜찮아? 케이. 다친덴 없어?」
거의 아무런 생각도 없었다. 생각한다는 말 자체가 머리에 떠오르지 않았다. 지금 막 자신이 저지른 짓, 최대 출력의 분노와 공포, 혼란을 남자의 뇌수에 때려 부은 것을 한순간도 후회하지 않았다. 뜻대로 되지 않는 몸을 움직여, 카즈키는 필사적으로 소녀를 향해 기어 갔다. 몸의 반쪽이 강산성 욕조에 잠겨 있는 느낌이다. 고통과 급격스럽게 사이킥을 최대 출력으로 발동한 탓에 사고가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소녀의 하얀 옷이 흔들린다. 검은 머리, 검은 눈동자. 이쪽을 보고 있다. 그 커다랗고 젖은 눈동자.
「케이. 케이. 대답해줘, 케이. 거기 있지? 이제 괜찮아. 나쁜 녀석은 내가 쫓아냈어. 대답해줘, 케이. 거기에 있어? 케이. 케이―….」
거친 비명과 요란한 구둣소리가 다가왔다. 등뒤에서 입구가 열리는 기척이 나더니, 우르르 사람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거품을 물고 실신해 있는 침입자는 총을 든 병사 집단에 의해 포위 당해, 즉시 보이지 않게 되었다.
「어이. 의료반을 불러. 부상을 입었어.」
무너져 내린 카즈키를 누군가가 안아 올렸다. 카즈키는 미약하게 저항하려 했지만, 그럴만한 기력은 이미 남아 있지 않았다. 시야가 흐려지고, 귀도, 눈도, 점토로 채워진 듯 무겁고 어두워진다. 멋대로 몸이 가라앉아 간다.
자신의 정신이 이다지도 허약했을 줄이야. 아니, 사이킥으로서의 기초 훈련으로서 정신 깊이 새겨뒀던 금기,「인간을 공격하기 위해 능력을 써선 안된다」는 규약이 제제 반응을 일으키고 있는 걸까.
관자 놀이의 무거운 둔통이, 머리에 못을 박아 넣는듯한 격통으로 변한다.
「이거 또, 화려하게 저질렀네.」
질린듯한 목소리가 들렸다. 필사적으로 눈을 뜨고 고개를 들자, 신이 팔짱을 낀채 지루한 듯 주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직도 목을 긁으며 경련하고 있는 침입자를 따분한 듯 내려다보며, 바닥을 구르던 토치를 걷어찼다.
「이런건 또 어디서 손에 넣은 건지. 뭐, 설령 직격했다해도 세라는 문제 없을텐데. 이런 현실 세계의 도구가 양자 법칙 하에 있는 여신에게 충격을 줄 리가 없지. 그런건 너도 잘 알고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카즈키.」
조심스레 들것에 실려지고 있는 카즈키를 향해, 신이 다가왔다. 거친 숨을 내쉬고 있는 친구를 기가 막힌 듯 바라본다.
「그건 그렇고 잘도 저질렀군. 사이킥은 기본적으로 그 능력을 인간을 공격하는데 쓰는게 금지되어 있지 않았어? 너도 여기와서 우리들의 부패한 윤리관의 영향을 받은 걸까? 아니, 이미 저지른 일이였지. 시에로란 소년이 죽었을 때, 자신의 분노를 방출해서 스탭들을 떨쳐낸 적이 있었으니.」
시끄러. 조용히 해줘. 그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누군가가 몸을 뒤집어, 옷을 자른 다음, 토치에 의해 입은 화상에 보호 냉각 젤을 바르고 있었다. 차가운 감촉과 함께, 뼛속까지 녹아 내리는 듯한 통증이 조금씩 가라앉더니, 이어 마비된 듯한 무감각으로 변한다. 마취의 효과일까. 의식이 혼탁해졌다.
「케이는….」
카즈키는 겨우, 목소리를 쥐어 짜냈다.
「케이는, 케이는 무사해? 그녀를 만나게 해줘. 그녀는, 케이는 다치지 않았어?」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카즈키. 꽤나 정신이 나갔군, 이건.」
한숨을 쉬며, 신은 고개를 저었다.
「카즈키. 케이는 이미 죽었어. 저기에 있는건 네 클라이언트 소녀고. 세라, 세라피타야. <테크노 샤먼>, 세라피타. 네 연인인 케이. 내 여동생 케이는 반년도 전에 열차 앞에 뛰어 들어서 자살했어. 장례식에도 참석했잖아. 기억 못해?」
「아냐. 케이는, 케이는 거기에 있어. 케이를 만나게 해줘. 나는….」
「이거 굉장히 혼란 상태인 걸. 어이.」
새로운 약물을 든 백의의 의료진이 다가온다. 그만. 난 제정신이야. 단지 케이가 무사한지 확인하고 싶은 것 뿐이야. 케이. 케이. 케이.
내가 구할 수 없었던 케이
고개가 쳐들리더니, 슉하는 압착 공기의 소리가 들린다. 저릿한 무감각이 단번에 의식을 침식한다. 어둠에 사로잡히기 전까지, 내내 카즈키는 어지러운 시야 속으로 케이를 찾고 있었다. 케이. 하얀 옷을 입은 케이. 은색으로 빛나면서, 어둠속에서 내게 말을 걸어오는 케이.
케이는 그 소녀 안의 세계에 사로잡혀 있다―….
의식을 완전히 잃는 그 순간, 카즈키는 사람들 속에 끼여 빤히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촉촉한 검은 눈동자를 보았다고 생각했다.
깨어난 것은 약 12시간 뒤였다.
「여어. 정신을 차린 모양이네. 기분은 어때?」
「나쁘진 않아…….」
머리 맡에는 신이 있었다. 딱 상태를 보러와 있었던 걸까. 아니면 감시 혹은 데이터 수집을 위해 와 있었던 걸까. 그 중 하나겠지. 카즈키는 얄꿎게 생각했다.
아직 머리가 좀 멍하다. 입이 마르고, 혀가 입천장에 달라붙어 있는 느낌이다.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입술로 그리 말하자, 신은 옆 테이블에서 빨대가 딸려 용기에 든 오렌지 주스를 갖다 준다.
자신의 방이 아니다. 처음 이곳에 납치 당했던 날 집어넣어졌던 방과 흡사했다. 눈이 시릴 정도로 하얀 시트와 커튼, 창문 대신 설치된 액정 패널은 낮은 광도로, 온후한 가을의 저녁놀을 비추고 있었다.
「너무 단번에 마시지마. 아직 마취와 진정제 효과가 남아있어. 잘못 마시다 기관으로 들어가면 질식할지도.」
고개를 끄덕였다. 신중하게, 입 안을 적실 정도로만 주스를 마시면서 자신이 무슨 소릴 했는지 떠올리려 했다. 사고에 안개가 껴서, 과거 수십시간의 일은 깨어진 거울에 비친 것처럼 불분명하게 조각조각 떠돌 뿐이였다. 그럼에도 자신이 뭔가, 뭔가 소중한 것. 몹시나 소중한 것을 계속 외쳤던 것은 기억하고 있다.
「네게 사과해야할 일이 있어, 카즈키.」
침대 옆의 스툴 의자에 앉으며, 신은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마 예상은 했으리라 생각하지만, 너를 습격한 것은 네 전전임자인 정신분석 선생이야. 그에 대해서는 보고서로 읽었으리라 생각하지만 그녀석이 탈주해 여신을 습격했어. 너는 그 소동에 말려 든 것 뿐이야. 화상은 상당히 심했지만, 지금 이식용 피부와 근섬유를 급히 배양중이야. 2, 3일 동안은 오른쪽 팔을 쓸 순 없겠지만 피부와 근육을 이식하면 원래대로 움직일 수 있을거야. 치료비는 걱정하지마. 뭐, 보험처리는 안되겠지만.」
자신이 한 말에, 신은 쿡하고 웃었다.
「네가 감싸준 덕분에 세라에겐 상처하나 없어. 연구팀은 눈물이 나올 정도로 감사 중이야. 헨리 마커스를 의식 혼탁 상태로 몰아 넣은 것엔 다소 불평을 쏟아내고 싶어하던 모양이지만 말이야. 『하지만 만의 하나 테크노 샤먼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이 계획자체가 허사가 되니까. 그 정도 쯤은 눈감아 줘도 되겠죠.』 그런 마담 큐베이의 의견으로, 시끄러운 녀석들은 찍소리도 못하게 됐어.」
「헨리 마커스…….」
「그래. 널 습격했던, 블로우 토치를 든 남자야. 기억 안나?」
「아니.」
헨리 마커스. 그렇다. 분명 그런 이름이였다.
보고서에 적힌 인명이, 비로서 구체적인 형태로 생생하게 뇌리 위로 떠올랐다.
레포트에 첨부되어 있던 영상은 이지적인 생김에 정장이 어울리는 젊은 남자였다. 도무지, 지저분한 구속복을 입고서 침을 흘리며, 토치를 휘두르며 습격해오던 좀비같은 남자와 동일 인물 같지가 않았다.
「그런가…. 그인가. 그럴거 같았어. 그는 어찌 됐지?」
「현재 무사히 자기 방으로 돌려 보내 구금 중이야. 엄중한 감시하에.」
신이 작게 어깨를 으쓱인다.
「사과해야 하는 게 하나 더 있어. 실은 헨리 마커스가 이 <EGG>에 보호되어 있는 건 기밀 유지 말고도 이유가 하나 더 있어. 그는 무슨 연유인지는 모르겠지만, 가끔씩 세라와 마찬가지로 양자 이동 능력을 발휘해.」
카즈키는 마시고 있던 오렌지 주스가 목에 걸릴뻔 했다.
「뭐, 그것도 정말 이따금. 그러니까 지금까지 제대로 보호해왔고, 세라와 마찬가지로 일정 에리어 밖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처치해 뒀어. 세라보다 능력은 낮고, 그의 경우엔 사망한 두 사람과 마찬가지로 큐베이 증후군에도 발병한 상태지만. 그게 어찌된 건지 때때로 신경계에 묘한 교란을 일으키는 모양이야.」
「그 자는『죽은 이를 부르는 자, 또는 점치는 자는 반드시 죽여야만한다. 』고 말했어.」
「아아, 그게 또 문제라서. 본인은 양심적 무종교주의자인척 했지만, 아무래도 어린시절 받은 엄격한 카톨릭 교육의 세뇌에서 벗어나지 못한 모양이야. 세라와의 접촉 이후 반달 정도 지났을 즈음. 이를테면 구약 성서의 『주(Yevh)』에 대한 경외심으로 그에게 있어선 이단의 무녀이며『죽은 이를 부르는 여자』인 세라에게 이상한 적의를 불태우게 되었어. 그 적의 끝에 방에 있던 미니 키친에서 식칼을 끌고 나와 세라를 찌르려고 했고. 그래서 게임 오버. 그는 그 자리에서 붙잡혀 연구하는 측에서 연구당하는 쪽이 되지 않을수가 없게 된거지.」
「죽은 이를 부르는 자…….」
카즈키는 공중을 바라보았다. 시야에 은색 조각상이 흔들린다.
죽은 자를 부른다. 죽은 자에게 말을 건다.
이는 즉 영매(靈媒)다. 무당과도 같은 것이다. 죽은 자와 산자의 세계를 잇는자. 카즈키 자신은 그리스도교의 신자가 아니지만, 구약 성서를 일종의 읽을 거리로서 훑어 본 적은 있었다. 신에게 버림 받은 왕이 죽은 자의 영혼을 불러내는 여자를 의지하는 이야기가, 분명 거기에 적혀 있었다.
「『당신들은 죽은 이를 부르는 자, 점술사의 곁을 찾아서는 안된다. 그들을 믿어 스스로를 더럽히지 말라.』」
「레위기 19장 31절이네.」
신이 선선히 말했다.
「아. 나도 딱히 좋아서 외우고 있는건 아냐. 그 가련한 헨리가 항상 그 말만 반복하니까. 싫어도 기억에 남아있는 것 뿐이야.『마녀는 살려 둬선 안된다.』 출애굽기 22장 18절,『점쟁이, 마법사, 주문을 읊는 자, 죽은 이를 부르는 자, 죽은 자에게 말을 거는 자는 너희들 안에 없도록 하라. 하느님 보시기에 이는 옳지 않기 때문이다.』 신명기 18장 10절에서 12절. 흥.」
신은 시시하다는 듯 코웃음 쳤다.
「하지만 왜 헨리가 마녀니 죽은 이니 뭐니 되풀이하게 됐는지는 아직 불명이야. 여하튼 그와 세라 사이에 어떤 대화가 있었는지는 표면적인 대화와 영상 기록 밖에 남아 있지 않아. 그가 큐베이 증후군 발병과 함께 일부분이긴 하나 양자적 능력을 발휘하게 된 것을 생각하면, 의식 불명이 된 전임자들과는 뭔가가 다른 요인이 있었던 거겠지. 카즈키, 뭔가 짚이는 건 없어? 세라는 너와의 세션을 즐기고 있던 모양이던데. 지금까지는 없었던 일이야. 가여운 헨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 내기 위해서라도 뭔가 고견이 있다면 들려줬으면 하는데.」
「미안하지만…, 지금은 무리야.」
약 때문에 굉장히 졸리다. 멋대로 감기려하는 눈꺼풀을 억지로 밀쳐 올리며, 카즈키는 최대한 또박또박 발음하기 위해 애썼다.
정신을 놓으면 혀가 꼬여서, 말이 말이 잘 나오지 않는다.
「어쨌든. 피곤해. 조금만 더 자게 해주지 않겠어? 아프진 않지만 졸려. 머리가 멍해. 생각은 나중에 하게 해줘.」
「그래, 미안. 네가 깨어난게 너무 기뻐서, 무심코 말이 많아졌어.」
신은 당황한 모양새로 의자 위에서 일어났다.
「담당자한테 네가 깨어난 걸 전해 둘게. 3일 정도 지나면 일어날 수 있을 거야. 상처도 남지 않을 거고. 이번일은 정말 미안하다고, 마담도 그리 전해 달래. 우리들의 세라를 지켜줘서. 미스터 호무라에게 어찌다 감사해야할지 모르겠다고.」
방을 나가며 신은 명랑하게 손을 흔들다가, 문득 멈춰서더니「아아.」하고 말했다.
「그리고 또 하나―…. 케이 일은 이제 신경쓰지마. 그녀 때문에 상처 입은 너를 억지로 이 일에 끌어들인 건 나니까. 괜찮다면, 그 건을 위해 카운슬러라도 준비하도록 해볼게. 신부가 성서 강의나 하는게 고작이겠지만.」
카즈키는 몸을 뒤척이려다가 실패한 다음, 눈을 감고 잠든척했다. 신은 잠시 대답을 기다리는 듯 문가에 서 있다가, 이어 소리내지 않게 슬쩍 방을 나갔다.
문이 조용히 닫혔다. 완전히 혼자가 된 것을 확신할때까지, 카즈키는 계속 잠든척 하다가, 이어 가만히 눈을 떴다.
천장이 어질어질 흔들려서, 체념하고 다시 눈을 감는다. 어차피 이 병실도 감시당하고 있겠지만, 그의 생각까진 엿볼 수 없겠지.
(케이.)
강렬한 수면을 저항할 수가 없었다. 카즈키는 진창같은 수면 속으로 추락해갔다.
뇌리에 은색의 빛이 반짝이는 어둠과, 증오로 일그러진 남자의 얼굴을 교대로 떠올리며.
***
침대를 털고 일어나는데 결국 1주일 정도 걸렸다. 배양된 피부와 근육에 몸이 익는데에는 나름의 재활기간이 필요하고, 이전과 같은 체력을 되찾는 것 역시, 실제로 상처가 아무는 것보다 훨씬 더 오랜 시간을 필요로 했다.
잠시동안 카즈키는 환상통에 시달렸다. 병실 침대에서 해방되어 방으로 돌아가고 나서도, 몇 번 정도. 밤중에 토치를 휘두르는 습격자와 레이저의 열기가 등을 도려내는 악몽에 비명을 지르며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곤 했다. 그럴때는 새로이 이식한 피부와 뼈, 근육이 그때와 마찬가지로 강산에 찢어진 것처럼 따끔따끔 아파왔다.
오늘밤도 그런 밤이였다.
저녁 식사를 취하기전에 잠깐 눈이라도 붙여둘 요량으로 침대에 쓰러져 있었더니 어느새 5시간이 지났다. <EGG> 내 표준 시간 상으론 이미 한밤중에 가까웠다.
시설 카페테리아는 24시간 사용 가능 하지만, 거기까지 갈 기력도 없었다. 방에 비치된 간이 키친에서 커피를 타낸 다음 빵을 뎁힌다. 평소 습관대로 차가운 생 햄을 주문하려 하다가, 지금 막 꾸었던 악몽이 되살아 났다. 두통과 구토감이 파도처럼 되돌아왔다. 주문을 캔슬하고 치즈와 야채 스틱 세트로 변경했다. 이어 나온 식사 트레이를 들고, 카즈키는 작업용 단말 데스크에 걸터 앉았다.
이 <EGG>는 그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컴퓨터다. 개인이 사용하는 단말은 거대한 컴퓨터 메모리의 일부를 할당받아, 각자 한 대의 가상적인 퍼스널 컴퓨터로서 작동하고 있는 것에 불과했다. 뒤집어 말하자면, 그 어떠한 데이터라 해도 이 시설에 겸비되어 있는 단말을 사용하는 한, 위쪽에 훤히 새고 만다는 의미다.
카즈키는 기기의 스위치를 켜고, 시스템을 기동했다. WELCOME 표시가 뜨는 것을 기다린 다음, 옆에 있는 백에서 메모리 스틱을 꺼내, 잭에 꽂아 넣었다. 이어 패스워드를 입력하자, 얼마 지나지 않아 모니터 화면이 <EGG>내 단말에서, 카즈키 개인이 사용하는 퍼스널 환경으로 전환되었다.
이 메모리. 정확하게 말하자면 메모리 스틱으로 보이는 퍼스널 라이즈 하이퍼 월은, 어디에나 감시의 눈이 닿아 있는 이 <EGG>에 대한, 카즈키의 사소한 저항이면서도, 그러면서도 최후의 보루였다.
카즈키의 정신 스트럭쳐 구성 소프트는 그렇지 않아도 매우 버라이어티가 풍부하게 커스터마이즈된 다른 정신기술자들의 것과도 격이 다르게 특수한 것이였다.
출장으로 카운슬링을 행할 때 등등, 준비된 머신의 출력이 부족하여 소프트를 잘 실행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그를 위해 카즈키는 언제나 작업 전용으로 처음부터 조리해낸, 작업에 가장 적절한 환경의 퍼스널 컴퓨터를 가지고 다미녀, 그걸 이용해 작업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러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상대가 자신의 개인적인 내면을 타인의 컴퓨터 메모리에 남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서. 어디까지나 본인이 제공하는 기기를 사용해 달라고 주장할 때 등이다. 그를 위해 카즈키는 반드시 이 메모리 스틱형 퍼스널 라이저를 가지고 다니며, 만의 하나 전용 단말을 사용할 수 없는 경우에도, 일반 컴퓨터를 일시적이나마 자신에게 익숙한 환경으로 변경하여 사용하고 있다. 이번 역시 그 습관을 따라 스틱을 들고 왔지만, 그게 다행이였다.
카즈키의 오리지널 작업환경을 재현함과 동시에, 퍼스널 라이저는 범용 컴퓨터에 접속할 경우 그 단말을 외부로부터 지키기 위한 가장 쉘을 기동, 일절의 외부 침입과 간섭을 차단한다.
네트워크 상으로 감시하고 있는 인간이 보면, 카즈키는 극히 평범하게 <EGG>내 네트워크의 일부 구역에서 일을 하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으나, 실은 파이어 월의 그늘에 숨어 자기 마음대로 굴 수 있는 것이다.
이 초 컴퓨터 <EGG>에게 얼마만큼 저항할 수 있는지는 불명이지만, 최소한 언제나 누군가의 감시하게 놓여져 있다고 느끼며 일하는 것 보단 훨 낫다.
가지고온 개인 단말은 여기로 납치된 날 몰수 당했지만 이 퍼스널 라이저는 상세한 분석에 사용되는 전용 소프트웨어가 들어있기 때문에, 이게 없으면 일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해 도로 돌려 받았다.
겉보기는 단순한 메모리 스틱이고, 실제로 커스터 마이즈를 거듭한 구축 소프트웨어와 거의 통째로 들어가 있으니 거짓말만은 아니다.
퍼스널 라이저로서의 기능은 몇 겹으로 암호화 처리 되어 있는데다, 내부 메모리의 보이지 않는 영역에, 무해한 코드로서 분할되어 수납되어 있다. 카즈키가 사전에 설정해뒀던 패스워드를 입력하면, 무의미한 코드는 즉시 서로 연동해 활성화되어 <EGG>에 갇힌 이 네트워크 공간에 자그마한 은신처를 만들어낸다.
통상의 단말을 위장한 은폐쉘이 문제없이 작동하는 것을 확인하고서, 카즈키는 만약을 기해 사전에 준비해둔 무해한 데이터를 네트워크에 방류했다. 부상을 입기 전까지 행해졌던 <테크노 샤먼>, 세라에 대한 세션 리포트와 스냅샷 통합 작업이다. <신(神)>과의 비접촉 상태일 때 찍어낸 스냅들은 세라가 이제까지 묘사했던 기하학 도형이나 동작, 시선의 움직임, 관찰 중에 발견한 기호 등등을 거듭 쌓아내 추측한 것을 형태화 한 것이다. 결코 엉터리로 작업한 것은 아니다. 그런 짓을 하면 바로 의심 받는다. 실제로 평범한 인간에 대한 세션이라면, 벌써 완전히 정신 전체도상을 파악하여, 본격적인 시술에 착수했을 단계다.
허나 카즈키가 정말로 분석하려 하고 있는 것은 그런게 아니였다. 외부의 침입이나 감시를 알리는 경고음에 주의를 기울이며, 카즈키는 퍼스널 라이저 내부 메모리 영역에서, 누구에게도 보여준 적 없고, 누구에게도 말한적 없는, 세라의 안에서 보았던 진짜 정신 풍경(마인드 스케이프)를 불러냈다.
단말이 회전해, 3D 모드가 된다. 위를 향한 모니터가 홀로 그램 투영을 개시한다. 호출 된 데이터는 어슴푸레한 어둠 속에 빛을 발하며 떠올르더니, 이어 초현실주의의 회화처럼 검정과 은색으로 빛나는 작은 풍경을 그려냈다.
작게 원호를 그리는 은색의 지평선. 그 이외에는 하늘도 땅도 전부 벨벳처럼 깊은 어둠으로 감싸여 있다. 그리고 그 속에 우두커니 선 은색의 인영. 굽힌 손을 한쪽 뺨에 댄채, 한쪽 다리를 가볍게 땅을 디딘 포즈로, 얼어붙은 그 모습은 마치 조르조 데 키리코의 그림에 등장하는 마네킹 같은 인물 같았다.
하지만 세션을 거듭할 때마다, 처음엔 조잡한 은색 직선으로 뎃생되어 있던 윤곽은 서서히 복잡하고 치밀해져 갔다. 얼추 17번째 스냅샷을 지금까지의 작업물에 신중하게 겹치자, 아직은 좀 흐릿했던 머리의 윤곽선이 한층 더 뚜렷하게 빛나며 어둠 속에 떠오른다.
카즈키는 손을 놓고서, 잠시 황홀한 듯 입체 영상을 들여다보았다.
은색의 인체는 지금은 완전히 여성의 형태를 띄고 있었다. 역시 마네킹같은 무기질로, 과장되고 일그러진 부분은 있었지만, 그게 누구의 모습을 취하고 있는지는 이미 명명백백했다.
기울어져 있는 머리의 우아한 형태, 섬세한 이목구비, 가는 팔과 허리, 몇 번이나 애무의 손을 댄적 있던 가슴. 비부를 숨기듯 조신하게 모은 허벅지.
― 케이.
(하지만…, 말도 안돼.)
케이는 죽었다. 그것은 사실이다. 알고 있다.
하지만 거기에 케이가 있다.
자신 역시 광기에 침식되어 가고 있는 걸까.
카즈키는 생각했다.
가여운 헨리 마커스. 그 역시 세라와 이야기 하면서, 과거에 잃은 누군가의 그림자를 그녀의 안에서 본 걸까. 그녀 안에 펼쳐진 그 암흑, 그 지평선 위에 은색으로 서 있는 조각상. 케이. 죽은 자의 목소리로 이야기하는 조각상.
처음 세라와 접촉했을 때 본 기묘한 광경은 그 뒤에도 때때로 카즈키를 찾아왔다. 아무일 없이 세션이 끝날때도 있었으나, 5번에 2~3번 꼴로 카즈키는 어린 여신의 눈동자 깊은 곳에 펼쳐진 암흑 속으로 추락하는 자신을 느끼고, 깨달으면 그 희미한 은색의 빛이 드리워진 암흑 속에 있었다.
그리고 처음과 마찬가지로 신체 의식의 소실과, 맹렬한 스피드로 이동하는 것을 경험했다. 이동한 곳에서는 언제나 그 은색의 조각상이 우두커니 서 있었다.
볼때마다, 조각상은 섬세해지고, 정밀하고 아름다워져 갔다. 소리를 내며 말을 걸어오는 일은 두 번 다시 없었지만, 희미하게 내리깐 시선과 서서히 과거 익히 잘 아는 존재와 비슷해져 가는 신체에 카즈키는 말로 다 할 수 없는 초조와 공포, 그리고 그와는 상반되는 강렬한 애정을 느꼈다.
애정이라고 하는 것이 옳지 않을지도 모른다. 집착, 망집이라고 해야할지도 모른다.
굳이 따지자면, 세라라고 하는 소녀에 대한 마음 그 자체는 시에로가 죽은 그 날부터 완전히 싸늘하게 식고 말았다. 그녀는 필경 이 세상에 속하는 존재가 아니다. 인간의 삶도 죽음도 그녀를 움직이진 못한다. 텅빈 그릇에 분노를 부딪혀 봤자, 아무 의미 없는 짓이다.
카즈키는 이미 자신을 컨트롤할 수 없는 상태였다.
그리고 그리 되어 있는 자신을, 그 어떤 누구보다 카즈키 자신이 잘 자각하고 있었다.
나날이 케이의 얼굴을 닮아가는 은색 조각상 때문에 세라와의 세션에 출두하는 건지, 아니면 그것이 일이라서 그러는 건지. 이젠 카즈키조차도 알 수 없었다.
세라와 케이가 자신 안에서 일체화 되어 가고 있다는 것도. 카즈키는 자각하고 있었다.
본디 그리 느낀 시점에서, 프로 정신 기술자라면 자신이 위험한 영역에 들어서고 있다는 것을 이유로 세션을 중단, 다른 담당자로 변경하도록 진언해야한다. 클라이언트와 시술자의 과도한 정신적 교루는 쌍방 모두에게 독이다. 그것은 케이 건을 통해 골수에 저릴 정도로 몸소 체험한 사실이다.
허나, 그 케이가 어둠 깊은 곳에서 은(銀)으로 빛나는 두 손을 뻗어 오며, 가는 목소리로 부르고 있다.
(『도망쳐.』)
(『도망쳐, 카즈키. 그 사람은 악마―….』)
(『죽은 이를 부르는 자, 또는 점치는 반드시 죽여야한다. 즉 돌로 때려 죽여야한다!』)
블로우 토치를 쳐든 습격자가 노호한다.
그는 어린 여신의 내면에서 대체 무엇을 본 것일까.
거기는 명부(Sheol)인 것일까.
케이.
카즈키는 소리 없이 중얼거렸다.
죽은 인간이 가는 장소의 문이, 그 어린 여신 속에서 입을 벌리고 있기라도 한 걸까. 아니면 뭔가의 작용에 의해, 케이의 혼이 거기에 사로 잡혀 있는 걸까? 케이의 오빠인 신은 여신 세라가 제일로 마음에 들어하는 인간이다. 그와 유사한 모습을 지닌 케이에게, 여신이 뭔가의 흥미를 품고, 육체를 떠난 혼―…, 의식이나 감정을 구성하는 전기적 활동의 잔재라고 부르는 것―을 붙잡고 있다고 생각할 수는 없을까.
(『도망칠 수 없어……. 우린, 인형…….』)
고통서린 케이의 목소리가 뇌리에서 메아리 쳤다.
(『……사로잡히고 말았어. 붙잡히고 말았어. 붙잡히고, 말았어. 우린 이제. 끝.』)
(『카즈키…, 우리들은…….』)
머나먼 과거처럼 느껴지는 케이의 장례식 날. 말을 걸어온 D.C 재생 기업의 남자에게, 카즈키는 그 자리에서 구토감을 느꼈다. 정신이 케이가 아닌데, 케이의 모습만을 본 딴 인형을 만드는 것. 그것은 케이가 가장 상처 입고 슬퍼했던, 정신적 유린을 다시끔 그녀에게 가하는 것이다. 인간의 정신이야말로 본질이며, 육체는 그릇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상은 오래전부터 존재하곤 했으나, 카즈키는 순수하게 기술자로서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육체의 유사함은 문제가 아니다. 기억, 마음, 정신. 뭐든 좋았다. 카즈키가 상대를 하나의인간으로서 식별하기 위해서는, 개인을 특정 지을 수 있는 정신 활동이 필수 불가결했다. 공감 능력의 힘 때문에 더더욱. 마음이 없는 재생체는 단순히 죽은 자의 모습을 한 살덩어리에 불과했다.
그런 살덩어리를 거래하는 것을, 그야말로 좋은 물건이라도 있다는 듯 의기양양한 얼굴로 말을 걸어오는 그 행위에 카즈키는 구토감을 느꼈던 것이다.
하지만 그 은색 조각상이 있는 명부에는―….
카즈키는 종교적인 성향의 클라이언트를 위해 구비하고 있던 구양 성서에 관한 라이브러리를 열어, 거기서『죽은 이를 부르는 여자』와 그녀를 의지했던 왕에 대한 이야기를 찾아냈다.
왕의 이름은 사울. 종교적 지도자였던 사무엘로부터, 이스라엘의 초대왕으로 임명받은 사울은 이어 신의 은총을 잃고, 사람들의 마음은 사울왕의 부하였던 젊은 다윗에게 옮겨간다.
곧 사람들은 다윗파와 사울파로 갈라지고, 민족간의 다툼이 일어나더니, 그 와중 중진이였던 에언자 사무엘도 세상을 떠난다. 그것을 계기로 다른 민족마저 끌어들인 대 전쟁이 일어나고, 곤란에 처한 사울왕은 사스스로 추방했던 마술사, 『죽인 자를 부르는 자』를 찾아가 죽은 사무엘의 영혼을 불러 달라고 애원한다. 나타난 사무엘의 혼은 사울에게 차갑게 했다.
『사무엘은 사울에게 말했다.「어째서 나를 일깨워, 나를 번거롭게 하는 것이냐.」 사울은 말했다.「곤경에 처해 있습니다. 블레셋인이 싸움을 걸어오고 있거늘 신은 저를 떠나, 더 이상 예언자의 말로도, 꿈으로도 대답해주시지 않습니다. 당신을 불러 들인 것은, 제가 해야할 일을 여쭙기 위해서입니다.』 사무엘은 말했다「왜 내게 묻는 게냐. 주님이 그대를 떠나, 적이 된 것이다. 주민은 나를 통해 말씀을 실행하신다. 그대의 손에서 왕국을 거두어, 그대의 이웃 다윗에게 주려 하신다. 그대는 주님의 말도 듣지 않고, 아마레크인에 대한 주님의 분노를 대신 수행하지도 않았기에, 주는 이에 그대에게 이리 하시는 것이다. 주님은 그대 뿐만이 아니라, 이스라엘 역시 블레셋인의 손에 넘긴다. 내일 그대와 그대의 아이들은 나와 함께 있겠지. 주는 이스라엘의 군대를 블레셋인의 손에 넘기시리라.」 사울은 즉시, 지면에 엎어졌다. 사무엘의 말에 겁을 먹었기 때문이다.』
모니터에 표시된 문장을 눈으로 쫓으며, 카즈키는 깊은 한숨을 쉬었다. 성서는 거듭 마법이나, 우상, 죽은 자의 영혼을 부르는 것을 금하며, 그에 혹해 얻을 죄와 혼의 부정을 피하라 논하고 있다. 어쩌면 자신도 이리 배신당한 왕 사울과 마찬가지로, 아무리 갈구해도 보람없는 것에 사로잡혀 과오를 범하려 하고 있는걸지도 모른다.
사울왕은 사무엘의 영혼이 내린 냉엄한 선고를 받은 다음, 한탄하며 왕궁으로 돌아가 절망 속에 전사했다. 자신의 앞 길에 기다리고 있는 것도 어쩌면 그 같은 운명일까.
허나 이미 움직이기 시작한 충동은, 어찌 막을길 없이 가속을 거듭해, 가슴 속에서 소용돌이 치고 있었다.
카즈키는 성서의 문장을 표시하던 윈도우를 끄고, 다시 케이의 얼굴을 한 조형이 우두커니 서 있는 어둠의 정신 풍경을 최대로 표기했다.
가볍게 허리를 비튼채, 헬레니즘 조각상처럼 우아한 포즈를 취한 그것은 작게 떨리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것이 구원을 청하는 케이의 사로잡힌 혼의 목처리인지, 단순히 모니터의 깜빡임에 불과한것인지. 그를 판단한 냉정함은 이미 카즈키에겐 존재하지 않았다.
(케이는 거기에 있어. 거기서 내게 도움을 요청하고 있어.)
전임자들은 이런 식으로 미쳐갔으리라. 자조적으로 생각했다.
광기 그 자체로밖에 보이지 않는 짓을. 진심으로 행하려 하는 자신이 있다.
이처럼 객관적인 자신도, 폭주하려하는 또 하나의 자신을 막을 맘따윈 없었다. 분열된 두 개의 자신을, 묘하게 냉정한 심정으로 카즈키는 관찰했다.
명부에서 불러낸 사무엘은, 사울을 질타했다. 이 어둠 속에서 케이를 구해냈을 때, 케이 역시 자신을 책망할 것인가. 만약 책망 받는 다해도, 그것은 감수하자. 케이가 죽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의 충격과 절망을, 조금이라도 메꿀수 있다면 그 정도 쯤 싼 대가다.
적어도 대체 왜 그녀가 자살을 선택했는지. 왜 아무말도 않고 질주하는 전철 앞으로 뛰어 들었는지. 그 이유를 들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자신은 케이의 혼을 불러 내겠지. 왜 자신에게 아무 것도 고해주지 않았는지 묻고 말겠지.
연인이며, 정신기술자였던 자신에게 상담해 주었더라면, 적어도 다른 길을 고를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어쩌면 자신이 하려는 일은, 그 무덤 앞에서 말을 걸어온 육체 재생업자 세일즈맨과 매 한가지일지도 모른다. 케이는 부활 같은 것을 바라지 않을지도 모른다. 이것은, 단순한 자기 만족이다. 그렇다고 관둘 마음도 없지만.
일본 신화속의 이자나기와 이자나미. 그리스 신화의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
지상과 명부로 갈리워진 연인들은 반드시, 산 자가 사랑하는 죽은이를 부활시키려 했으나 대개의 경우 실수를 범해 다시 한 번 영원히 갈라지게 된다.
정신 기술자로서 머리에 채워넣었던, 인류의 집합적 무의식의 총체라고 할 수 있는 신화속의 이야기들을, 카즈키는 머릿속에서 몰아내기 위해 노력했다.
(케이. 내가 반드시 널 거기서 꺼내 줄게.)
설령 그 어떤 대가를 지불한다 하더라도.
의자에 기댄채 미진조차 않는 카즈키를, 은색의 조각상은 작게 떨면서 머나먼 눈으로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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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새로이 3장의 시작이네요. 얀 슈반크 마이어의 LUNACY로 대표되는 광기의 시작입니다.^^
이제 슬슬 3권 종막 부분입니다^^ 70페이지 정도 남았나... 4포스팅 정도면 3권도 끝나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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