アバタ-ルチュ-ナ-(3)クォンタムデビルサ-ガ 五代ゆう 저 |
수면의 저변에서 그녀의 목소리를 듣는다. 몇 번인가 마음을 이었던 경험은, 부드러운 밀랍으로 찍은 편지봉투의 인(印)처럼 아직도 그를 봉하고 있다. 메아리치는 목소리는 허공에 울려퍼져, 몇줄기의 푸르고 가는, 허나 강인한 실이 되어 그의 수족을 얽어맨다. 꼼짝도 못하고 허공에 매달린 그는 어둠속에서 몇 번이나 비명을 지르지만 그 목소리는 자신의 귀에 닿지 않는다. “아아, 용서해줘! 용서해줘!!” 허나 그는 자신이 정말 그것을 바라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고통의 기억은 그녀가 그에게 남긴 유일한 것이다. 그녀가 그의 곁에 두고 간 물건 전부는 그녀의 사후 처분했다. 하지만 기억만큼은 처분할 수 없었다. 원한다면 모든 기억을 씻어내는것도 가능했다. 그를 위한 기술도, 돈도 그에겐 충분했다. 허나 그는 둥지에 유리알을 모으는 까마귀처럼 고통을 모아 그저 바라보는것을 선택했다. 금이 간 파편이 날카롭게 혼을 찌르는 고통을 맛보고 눈을 아프게 하는 기억의 난반사를 이리저리 기억속에 비춰보며 그 순간에 이를때까지의 시간을, 그녀와 만나 그 죽음때까지 나누었던 대화를, 표정하나하나를, 물흐르는듯 우아한 움직임으로 차례차례 재현했다.
제 1장
허나 그 무엇보다도 박사의 주목을 끈 것은 사체의 오른팔이였다. 오른팔 팔꿈치 아래에서 손 끝이 모조리 반투명한 물질의 덩어리였던것이다. 그 덩어리 너머로 손과 손가락의 프리즘같은 윤곽이 다채롭게 비쳐보였다. 스페인의 정복자들의 갑주와도 닮아있는 그 지극히 커다란 보석 손목보호구는 햇빛 속에서 메말라가며, 그 결정체는 딱딱하고 선명한 빛을 발하기 시작하고 있었다.
J. G. 발라드 『크리스탈 월드』
1
방울소리같은 전자음이 집요하게 울리고 있었다. 호무라 카즈키는 신음소리를 내며 몸을 뒤척여, 눅눅한 셔츠에 얼굴을 파묻었다. 손을 더듬었지만 베게는 어젯밤 어딘가에 던져버리고 말았다. 마지막 숙면의 잔재가 으깨지고, 안구 깊은 곳으로 떨어져내렸다.
더 이상 잠드는건 불가능하다. 마지못해 눈을 뜨고 닫힌 블라인드 사이로 간간히 새어드는 정오의 빛에 작게 욕설을 내뱉는다. 거실 겸 오피스로 사용하고 있던 옆 방에서 아직도 콜음이 울리고 있었다. 최근 2, 3개월동안 발조차 들이밀고 싶지 않았던 방이였다. 망할.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이불을 뿌리쳤다. 셔츠 한 장만을 걸친 나체에 공기가 차갑다. 마지막으로 공기조절기를 켰던게 언제였는지, 애당초 켰던적이 있었는지조차 기억나지 않았다. 차가운 바닥을 맨발로 내딛으며 카즈키는 옆 방 문을 열었다. 데스크위엔 옅게 먼지가 쌓여있었다. 청소 서비스를 끊었던것을 새삼 떠올린다. 아무래도 좋았다. 세계에는 아무래도 좋은 일이 너무많다. 방울처럼 노래하며 녹색 라이트를 깜빡이는 컴챗 단말을 쏘아보았다. 나는 무기한 휴가중일텐데. 그건 길드 마스터에게도 전달한 사항이고, 일절 접촉을 취하지 말아달라고 통지해두었다. 마스터도 그걸 알고 있다. 자신의 일에는 특히나 건전하고 강인하며 약점없는, 혹은 약점을 능숙히 은폐할 수 있는 정신 구조가 필요했다. 하지만 그녀를 잃은 이래 카즈키는 자신의 능력을 신뢰할 수 없게 되었다. 그건 운동선수에게 아킬레스건이 절단된거나 마찬가지로, 때론 목숨을 잃게 될지도 모를 정신적인 외상(트라우마)였다.『푹쉬게나.』
마스터는 동정의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스탭이 주는건 이쪽으로서도 뼈아픈 일이긴 하지만. 자네같이 우수한 정신기술자(사이테크)를 잃는 건 훨씬 더 문제지. 공감능력자(엠파스)들이 모두 자네같은 심리적 특징을 지니고 있는게 아니니 말이야. 복귀할 수 있을 때까지 사양말고 쉬게. 어차피 자네는 유급휴가도 썩을 만큼 쌓여있겠지?』
호출음을 흘려들으며 방을 빠져나와 주방에 들어간 다음 주방 싱크크대 위에 구르고 있는 패키지에서 몇종류의 서플리먼트(건강보조식품)을 꺼내 미네랄 워터와 함께 삼킨다. 이것과 칼로리바가 근 1개월간의 주된 식사였다. 근육이 빠지고, 나날이 자신의 얼굴이 초쵀해져가는 것을 거울을 보지 않아도 알았지만 그런걸 신경쓸 이유따위도 없다. 누군가를 만날 예정도, 나갈 예정도 없다. 식량이 떨어지기전에 계약해둔 배달 서비스가 정기적으로 서플리먼트와 물, 그 외의 생필품을 배달해주고 있다. 휴가를 취하기 시작하고 나서부터 카즈키는 집 문 밖으로 한 발짝도 내딛어 본적이 없었다. 호출음은 아직도 울리고 있었다. 길다. 짜증스러워졌다. 애당초 착신거부를 해둬야 했었다. 아니 해뒀었나. 그 정도 일조차 기억에 없었다. 어쨌든 내버려두면 강제 통화든 넷 새크터리가 응답하든 할테고, 상대의 메시지를 수취해둘거다. 보나 안 보나는 나중에 판단하면 된다. 어쨌든 볼 맘은 티끌만치도 없었지만. 미네랄 워터를 마시고 어정어정 주방밖으로 나선다. 겨우 전자음이 그치고 넷 새크터리의 침착한 합성음이『네』하고 응대했다.『이곳은 A랭크 정신 기술자, 카즈키 호무라의 오피스입니다. 당 오피스 소유자는 현재 휴가를 취하고 잇으며, 예약접수는 불가능합니다. 클라이언트께서는 별도의 오피스를 찾아주시거나 이하의 통합안내 센터에 문의하시어 가까운 멘탈 메디컬에 상담해주십시오. 번호는 A-2361-45825…』
『적당히 좀 해, 카즈키.』
『얼른 챗 연결해. 거기 있는거 아니까. 이건 너밖에 할 수 없는 일이야. 얼른 연결해. 카즈키, 두 번은 말 안한다.』
손에서 반쯤 남은 페트병이 떨어졌다.굴러 떨어진 병에서 새어나온 물이 바닥을 적시는데도 불구하고 카즈키는 데스크로 달려갔다. 짜증스럽게 점멸하고 있는 라이트 버튼을 두드려 화상을 출력한다. 데스크 정면 투명한 플레이트에 빛이 들어오더니 높은 등받이 의자 위에서 여유로운 표정으로 다리를 꼬고 앉은 젊은 남자의 모습이 비춰졌다. 벌거벗은 몸으로 창백하니 거칠게 숨을 내쉬는 카즈키를 보자 얇은 입술이 모질게 웃었다.
『여어.』
그는 말했다.『오래간만이네, 카즈키. 케이의 장례식 이후로 처음인가. 제법 야위였네. 굳이 말하자면 정말 비참한 꼴이야.』
「신.」
데스크에 들러붙듯 손을 얹은 그의 뒤에서 물이 소리도 없이 먼지 쌓인 바닥위로 번져나가기 시작했다.
1주일 뒤 카즈키는 가장 가까운 멜버른 제 3 에어포트에서 셔틀에 타 몇 개의 에어라인과 비행기라고 부르기 힘든 빈약한 세스나를 갈아타며 아메리카 대륙을 남에서 북으로 거의 횡단하는 하늘길 위에 올라서 있었다.
허황된 액션 영화가 흐르는 것을 끄고서 카즈키는 영상을 외부 세계의 동향을 비추는 카메라로 돌렸다. 옆자리의 손님이 별난, 혹은 취미도 이상한 녀석이라는듯 진저리나는 듯한 시선을 보낸다. 그도 그렇겠지. 카즈키는 남일처럼 그리 생각한다.
이런 시대에, 게다가 북아메리카로 들어설수조차 없는 빈곤층이 모인 남아메리카 끝자락에서 하계를 내려다보려하다니, 실로 악취미가 아니면 불가능한 행위다. 해변가에 깨어진 유리처럼 눈부신 선을 그리고 있는 것은 결정화된 플랑크톤과 해양생물의 사체가 쓸려든 것이다. 심해 깊은 곳에 들어가면 태양빛은 약해지지만 약해진 빛이라도 오랜기간동안 쬐면 그 영향에서 벗어날수가 없다. 일부 심해 생물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어류와 해양포유류는 절멸, 산호나 해초류는 우거진 수정기둥으로 화했다. 때때로 해류를 만나 깨어진 것들이 이렇게 유리같은 플랑크톤과 물고기 파편과 함께 해변가에 쓸려들어온다. 태양빛을 쬐어 다이아몬드 알갱이처럼 빛나는 그것은 끊임없이 거듭 쌓인 해양생물들의 사체의 군집이였다. 조금씩 카메라를 줌한다. 셔틀은 바다위를 날고 있었다. 파도치는 모습이 화면 우측 끝에 비치고, 그 주위로 앙상하게 마른 사람들 몇몇이 느릿느릿 꿈틀대고 있었다. 밀물에 쓸려와 물가에 남겨진 물고기나 해초, 장작으로 쓸수있는 유목, 약간의 현금수입이 되는 조개나 마모된 유리알등을 주워모으고 있는 것이다. 더더욱 줌한다. 움직이는 인영이 보다 더 선명해진다. 대부분이 14~15세. 아니면 기이하게 늙은 노인들로밖에 보이지 않지만 실 연령대는 제각기일것이다. 태양광 대책을 제대로 세운 대도시 이외에는 이런 영양불량이 만연해있다. 큐베이 증후군의 출현이래, 세계의 식량사정은 최악의 수치를 갱신하고 있었다. 소녀 하나― 더러운 스커트를 두르고 있어서 그렇게 판단은 했지만 아닐수도 있다―가 제대로 걷지 못하고 쓰러진다. 지팡이대신 짚고 있던 굽은 나뭇가지가 바닥을 구른다. 근처에 있던 노파가 동굴 같은 입을 열어 호통쳤다. 무슨 소릴 하는건진 모르겠다. 카메라는 음성까진 담아내지 못한다. 소녀는 다급히 지팡이를 찾아 일어나려한다. 크게 걷어올려진 스커트 아래로 태양광을 띄어 눈부시게 반짝이는 것이 있다. 수정의족? 아니. 아메리카에 들어가기 위한 입국 비자조차 얻지 못하는 그녀가 그런 것을 손에 넣을 여유가 있을리 없다. 그녀 역시 큐베이 증후군의 희생자중 하나인 것이다. 태양광을 쬐면 쬘수록 점점 더 진행될 위험성이 늘어나는데도 살아가기위해선 무자비하게 이글대는 태양아래서 식량을 모으러 나서지 않으면 안된다.「죄송한데 그거 꺼주시지 않겠습니까?」
견디지 못한듯 한자리 건너편에 앉은 노부인이 말을 꺼냈다.「도저히 못보겠어요. 무서운거라면 뉴스나 넷 송신만으로도 충분해요. 당신은 흥미가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카즈키는 순순히 사과한다음 영상을 바꿔 다른 채널을 찾았다. 클래식 연주회 풍경이 흐르는 채널이였다. 모차르트 협주곡을 지휘하고 있다. 노부인은 만족한듯한 모양이였다. 카즈키는 애매한 웃음을 띄워보이며 좌석 일부로 손을 뻗어 겸비되어있는 데이터 슬레이트를 꺼냈다. 이 역시 셔틀과 마찬가지로 구형이라 도트가 심하고, 액정은 노란색을 띄고 있었지만 영 못쓰는건 아니였다. 카즈키는 월드 뉴스 사이트를 호출, 기사 색인들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밝은 기사는 없다. 톱에는『큐베이 증후군에 의한 사망자, 세계 2백만명 돌파』 라는 표제가 크게 걸려있고 그 외엔『메헬렌국 연합 연합 사무총장, 큐베이 증후군 예방에 대한 회담 발표』,『로마 교황, 식스투스 12세, 큐베이 증후군이 신의 구제라는 설은 이단이라고 비난』,『인류의 식량 자급률, 작년 치보다 마이너스 158%, EU식량청이 계산』,『아메리카 합중국 하원, 난민수용 제한 의안을 상원에 제출』하는 제목들이 늘어서 있다. 아메리카와 중국은 난민유입처로서 가장 인기있는 장소다. 수용측 역시 난민을 편리한 노동으로 이용해온 과거도 있다. 허나 거기에도 한계가 있었다. 아무런 기술도 재산도 없는 난민을 무제한으로 수용하면 기다리고 있는건 자멸 뿐이다. 고대 번영했던 인류 세계는 지금은 그 그림자조차 없다. 소수의 부유한 국가를 제외한 대부분의 국가는 큐베이 증후군과의 싸움에 피폐해져, 잇달아 와해되어갔다. 아메리카와 EU, 그리고 중국, 남반구에서는 오스트레일리아가 국가 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몇 안되는 장소지만 그것도 완전히 태양광 대책이 가능한 도시층에 한정되어 있다.나머지는 난민으로서 최저한의 자비에 불과한 원조를 받으며 조금이라도 무시무시한 태양빛을 피할 수 있는 장소로 웅크려들던가, 밤의 어둠을 틈타 짐승처럼 식량을 찾거나 혹은 같은 처지의 동료들을 습격해 들개처럼 배를 채우던가하는 수밖에 없었다. 큐베이 증후군 발병의 위험을 무릎써가면서까지 해변에서 식량을 찾는것은 완전히 궁지에 몰린 인간들 뿐이다. 카즈키는 일단 일본과 오스트레일리아 양국의 국적을 지니고 있지만, 일본은 이미 세계지도에서 사라진 국가 중 하나였다. 아직도 정부는 존재하고 도쿄나, 오사카, 나고야, 쿄토 등, 소규모나마 태양광을 방어할 수 있는 도시는 남아있긴하지만 전세기말부터 계속된 심각한 경제불황, 정치혼란 상황하에서 큐베이 증후군에 의한 농업, 가축 괴멸은 보다 더 크나큰 타격을 입혔다. 원래부터 식량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던, 식량 자급률이 낮은 국가였다. 게다가 실로 얼마안되는 국토 대부분이 태양광에 노출되어서야 살아갈 장소따윈 어디에도 없다. 살아남은 국민은 좁은 자국에서 벗어나 조금이라도 더 살아남을 길이 있음직한 아메리카나 그 외의 도시를 향해 가라앉는 배에서 도망치는 쥐떼처럼 탈출해나갔다. 카즈키의 모친의 조부는 독일계, 부친은 일본인이였다. 모친을 넘어 격세유전된건지 카즈키의 머리칼은 희미한 붉은 빛을 띄고 있다. 햇살을 쬐면 불타오르는 불꽃처럼 보인단 소릴 들은적도 있다. 사이킥에는 붉은 머리칼을 지닌 자가 많단 소릴 들은건 언제적이였을까. 어쩌면 얼굴도 모르는 독일인 외증조부에겐 사이킥의 인자가 잠들어 있었는지도 모른다. 카즈키는 고개를 저어 생각키도 싫은 가족의 기억을 머릿속에서 털어내고, 습관대로 기사링크를 훑었다. 광다발성세포결정화병(光多發性細胞結晶化病), 통칭 큐베이 증후군. 시작은 약 반세기 전의 일이였다. 아메리카의 초원(사반나) 한가운데서 완전히 결정화된 한무리 임팔라의 사체와 그와 마찬가지로 결정화된 식목들이 발견되었다. 당초엔 전위적인 아티스트 집단이나, 과격 테러리스트들에 의한 퍼포먼스라고 생각되어졌다. 허나 나날이 비슷한 보고가 늘어, 신체의 일부가 결정화된 누, 기린, 웅크린채 거대한 결정으로 화해있는 코끼리등이 속속들이 발견되었다. 육식동물도 예외가 아니라 사자나 치타, 하이에나들에게도 같은 현상이 일어나고 있단것이 보고 되었다. 독수리나 플라밍고 등의 조류 역시 마찬가지였다. 현재 아프리카 등의 적도 부근에서 가장 먼저 병례가 나타난 이유는 내리쬐이는 햇빛의 강한 자외선이 원인이라고 하고 있다. 허나 그 당시엔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전혀 이해할수 없었다. 사반나의 레인저들은 목을 갸웃대며 매일 태양 아래로 향해, 찬란히 결정화한 동물을 지프차에 한가득 싣고서 돌아왔다. 나무나 식물의 결정화도 진행되고 있었다. 도처마다 SF 영화에서나 나올법한 기묘한 다이아몬드 숲이 빛나며 광물표본같이 투명한 풀들이 바람에 흔들리는 일 없이 무지개빛으로 차갑게 정지해 있었다. 최초로 인간 환자가 나온 것은 아프리카였다. 밤낮 사반나로 나가 원인불명의 결정화 현상을 조사하고 있던 저명한 동물학자가 어느날 그을려 갈색이 된 피부가 묘한 광택을 띄었고, 만저보니 매끈매끈했다. 그곳에만 체온이 느껴지지 않고, 손가락으로 만져도 감촉이 없다. 마치 유리로된 얇은 판을 붙인것처럼. 며칠뒤 병은 진행되어, 그는 두팔에서 시작해 어깨까지 아무런 감각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얇은 유리장같았던 병변 부위는 신체 깊숙한곳까지 진행되어 유리처럼 변해버린 몸은 거의 투명해져서 팔너머로 반대쪽이 보였다. 상완골과 어깨 관절의 그림자가 수정내부에 희미하게 금진 것처럼 떠올라 있었다. 그제까지 회수되었던 동물의 조직은 이미 분석 중이였지만 인간 환자가 나온것을 통해 이 기이한 병변의 조사는 아프리카 뿐만이 아니라 세계 만국 보건기구의 최우선 연구과제가 되었다. 나온 결과는 이 증상은 일종의 이상 단백질의 증식에 의한 변이로, 병례로서는 전세기말 문제가 되었던 BSE, 또는 뇌스폰지상 뇌증, 인간에게 있어선 야곱 크로이츠 펠트병과 많은 유사점을 지녔다는 것이였다. 야곱 크로이츠 펠트병은 체내에 변이 프리온이 유입되는 것에 의해 발병한다. 변이 단백질인 프리온은 생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암세포처럼 주위 단백질을 자신과 같은 변이 프리온으로 바꾸어 증식, 뇌를 스폰지처럼 구멍 투성이 상태로 만들어 환자의 정신생활을, 이어 목숨을 빼앗는다. 병원체 없는 질병. 치료법이 없으며, 변이한 부분을 절제해도 바로 복수의 다른 장소에서 결정화가 시작된다. 변이한 프리온을 원래대로 되돌리는것도, 현재의 의학으로서는 불가능. 그리고 이 신형 이상 프리온은 설령 종자가 되는 프리온이 없어도 체내에서 멋대로 발생하여 뇌뿐만이 아니라 전신세포를 침식, 증식을 거듭해 이윽고 조직 전부를 수정의 조각상으로 변환한다. 사반나에 서 있던 결정화된 동물들처럼. 세계는 패닉에 빠졌다. 이 뉴스가 보도되고나서 세계 각지에서 같은 병변에 고개를 갸웃거리던 사람들이 노도처럼 의료기관으로 밀어닥쳤다. 타이밍을 짠 것처럼 그제까지 간과해왔던 갖가지 이변―, 어느날 지면에 떨어져있던 아름다운 수정새나, 얼음을 깎아만들어낸듯했던 꽃이나 나무, 앞다리와 몸 일부가 투명해진 상태의 들고양이 등등의 보고가 쇄도해왔다. 인류가 깨닫지 못하고 있던 동안 이변은 세계 전역에 번져 있었던 것이다.
패닉에 빠진 민중에게 의료진은 이리 대답할 수 밖에 없었다. 가능한한 태양빛을 쬐지 않도록 해주십시오. 태양빛에 노출된 시간과 프리온 발생률은 거의 비례합니다. 원인은 불명입니다. 그저 통계적으로 그리 나와있습니다. 네. 태양입닏. 태양빛을 쬐선 안됩니다. 가능한한 낮에 밖으로 나가는걸 삼가주십시오. 집안에서도 가능한한 빛을 차단하고, 밤에만 활동하도록 해주십시오. 첫 환자였던 동물학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때, 그의 육체는 거의 어깨아래까지 결정화가 진행되어 있었다. 보통이라면 다장기 부전으로 옛날에 죽음에 이르렀을 경우건만, 이 질병은 마지막까지 환자는 공포에 떨며 돌이 되어가는 자신의 몸을 바라보며 다가오는 죽음의 발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 밖에 없었다. 동물학자는 끊임없이 계속되는 실험과 조사, 희망없는 치료의 나날에 지쳐 간신이 움직이는 턱과 왼쪽 어깨사이에 권총을 끼워넣고, 총구를 귀에 박아 방아쇠에 끊을 묶어 이로 그를 잡아당겨 자살했다. 그즈음에는 인류를 엄습한 이 재액에도 통칭이 붙여져 있었다. 큐베이 증후군, 최초의 환자의 주치의이며, 그 이후 끝없이 이어진 환자들의 치료와 연구의 제 1인자가 된 프랑스인 여성 의학자, 마리 마르고 큐베이가 그 이름의 기원이 되었다. 그녀는 정력적으로 연구를 거듭해, 각계의 과학자들과의 활발한 공동연구를 통해 태양흑점의 활성화와 결정화 현상발병의 인과관계를 밝혀냈다. 태양 흑점이 활성화하면 태양이 언제나 발하고 있는 전자파가 대폭으로 증대, 태양빛에 포함되어 있는 각종 입자나 비가시광선치에 변동을 준다. 결정화를 일으키는 프리온은 이 증대된 전자파, 혹은 그에 의해 변동된 방사선이나 자외선의 조합에 의해 만들어지는게 아닐까하는 추론이 세워졌다. 이 추론을 가설로 정리해 그제까지 수집해온 막대한 병례와 함께 포괄적인 연구로 발표한 것도 그녀가 최초였다. 카즈키는 링크에 기재되어있는 큐베이 여사의 사진을 바라보았다. 아직 결성화 현상에 그녀의 이름이 붙지 않았던때에 찍은 사진이다. 밤색 머리칼을 꽉 묻은채 연구팀 한가운데 서서 입을 굳게 다물고 백의 주머니에 손을 넣고 카메라를 직시하고 있는 그녀는 렌즈 너머에 있는 무언가를 꿰뚫을듯한 날카로운 눈으로 쏘아보고 있었다. 주위의 남성 연구원들과 비교하면 작은 체구에 지나치게 말라 올빼미나 매 무리속에 참새가 한 마리 끼여있는것같았지만, 그 강한 눈빛게 꽉 다문 입가는 팀의 달느 멤버들을 위압하는 오라를 발하고 있었다. 지금은 그녀도 상당히 나이를 먹었을 것이다. 이 사진을 찍은건 카즈키가 태어난것보보다 18년전, 카즈키는 현재 26세. 큐베이 증후군의 연구에 손을 댔던 그녀는 30대 전반의 신진 의학자였다. 지금도 연구의 최전선에 있단 얘긴 뉴스로 들어 알지만, 귀중한 사이킥이며 랭크A의 정신기술자로서 차광돔에 내에 주거할 수 있는 1급 시민권을 지닌 카즈키에겐 지금으로선 머나먼 이름이었다. 카즈키는 슬레이트를 간이 데이터리더로 전환해, 클라치백에서 메모리스틱을 꺼내 삽입했다. 자동적으로 영상재생소프트가 기동하고, 내용을 읽어들인다. 작게 구획지어진 윈도우 안에서 과거의 급우가 웃음을 띄고 있었다. 벌써 몇 번이나 반복해 보고 있는지조차 몰르 신의 호출영상챗. 그때…, 처음 나눈 대화는 거의 아무것도 머릿속에 들어오지않아 기계적인 대답을 하는게 고작이였다. 그저 망연히 3개월전에 죽은 연인과 닮은꼴의 얼굴이 친근히, 허나 남자의 목소리로 말을 걸어오는 악몽에 젖어있었다. 케이. 케이는 3개월전에 죽었다. 전철 앞으로 뛰어들어가, 원형조차 모를 정도로 조각조각난채. 그런데 왜 지금 다시, 같은 얼굴이 이렇게 아무일도 없었던것처럼 스크린 너머에서 말을 걸어오고 있는걸까. 내용을 이해한것은 잠시 진정한다음, 용기를 쥐어짜내 리플레이 커맨드를 단말에 쳐넣은 다음이였다. 극히 친근한 벗으로서 보내오는 인사, 대학시절을 떠올리게하는 농담, 가벼운 야유, 그리고 일의뢰. 성가신 정신적 문제를 품고 있는 유복한 클라이언트. 학술적 견지에서도 유용한 이 환자의 치료에 부디 참가해달라는 운운. 동시에 단말에는 그 환자에 대한 자료가 수신되어져있어서, 프린트 아웃하자 간단한 페이퍼북정도의 두께가 되었다. 신원 및 연령, 성별은 아직 정식으로 프로젝트에 소속되지 않은 카즈키에게는 비밀인듯 공개되어 있지 않았다. 중증의 자폐적 증상, 난인성, 격발적 패닉, 통합실조증과 유사한 행동, 혹은 다중인격, 망상과 현실을 구분짓지 못하는 성향. 파일은 정신질환 사전의 페이지란 페이지를 그대로 카피에 놓은듯한 증상으로 가득차 있었다. 혼란한 문자위에 무수한 소견들이 드잡이질 하고 있는듯했다. 일단 끝까지 훝어봤지만 레포트가 가리키고 있는 그 환자, 클라이언트의 문제는 결국 완전『불명』그 한마디였다. 돌이켜보면 그때 분명하게 거절해뒀어야했다. 신은 단순히 벗(혹은 과거의 벗이라고 해야하나)인 정신 기술자가 슬럼프에 빠져있단걸 알고, 그것이 자신의 여동생의 죽음이 원인이란것에 조금이나마 가슴아파하며 재기에 도움을 주기위해 연락해온것이다. 그리 생각하며 “신경써주는건 고맙지만”하고 정중히 거절해버리면 끝날 사태였다. 허나 카즈키는 다음날 보내져온 항공권 날짜를 확인하고서 트렁크에 짐을 채워넣은뒤 거의 아무런 생각없이 지시대로 셔틀에 올라탔다. 왜. 자문해도 제대로된 답은 돌아오지 않았지만. 그저 답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연락해온 것이 신이였다는, 그거 하나뿐이였을지도. 오빠는 악마야.
케이는 말했다. 하지만 난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오빠의 명령대로 따르는것말곤, 아무것도. 머릿속에서 밝은 화면속에서 과거의 벗이 가벼운 말투로 말하는 모습이 끊임없이 빙글빙글 돌았다. 두 번 다시 만날 예정은 없었고, 만나고싶지도 않은 상대였지만 그 얼굴을 본 순간 과거의 결의는 덧없게도 무너졌다. 영상은 3번째 리플레이를 끝마치려하고 있었다. 카즈키는 피곤한 눈가를 문지르며 메모리스틱을 뽑아 슬레이트를 제자리에 돌려놓았다. 좀전의 노부인은 무릎담요를 어깨까지 끌어올려 가벼운 숨소리를 내며 잠들어 있다. 카즈키도 곁에 개켜져 있던 담요를 들어 무릎에 펼친다음 배 위에서 깍지를 꼈다. 눈을 감자 어둠이 퍼져나갔다. 셔틀의 작은 엔진음 너머로, 모차르트의 현악 4중주가 빛의 소용돌이처럼 솟아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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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옥편과는 다르게 약간 이질적인 느낌이 드시겠지만 근토편 역시 굉장히 흥미진진합니다. 약간 어브노멀한 느낌도 드시겠지만. 사실 4권이 굉장히 흥미진진하고 재밌는데다가 2권과 바로 이어지는 내용이라서 감질나긴하지만 역시 3권을 넘어가면 안될것같더군요. 3권자체도 다시 읽어보니 재밌구... 물론 4권의 폭풍 게일횽보단 못하겠지만...
참고로 큐베이 증후군의 모티브가 된 작품 J.G. 발라드의 크리스탈 월드는 국내에 이미 간행되어있더군요. 시공사판은 품절이지만 이후 새판본이 나와서 "크리스탈 세계"로 나와있습니다. 덧붙이자면 본 소설판의 작자이신 고다이 유우 선생의 라이트 노벨인 파라켈수스의 딸도 국내에 정발되어있습니다. 고다이 선생께 흥미가 계신 분이라면 그쪽도 참고해 보시는것도 괜찮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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