アバタ-ルチュ-ナ-(1) 五代ゆう 저 |
* 링크는 예스 링크지만 교보에서 사시는게 더 쌉니다.
디지털 데빌 사가의 원안 소설.
Time : ST-5:43:21
Solar-Noise LEVEL8
Point; 02A7-7B77845
In Action
Scanning.../
Height ; 3567mm
Length; 2225mm
Width; 2225mm
Weight ; Unknown
Material; Unknown
Objects; Unknown
Scanning retry..........
Category; Error/
제 1장
우리들은 카오스의 아이들이며, 변화의 저변에 있는 구성은 붕괴이다.
근본적으로 거기에 있는 것은 추락이며, 막을 수 없는 카오스의 조류뿐이다.
P.W. 아트킨스
1
시선을 느꼈다.
고개를 들자 비가 내려떨어졌다. 은색의 비다. 발치에 넘실대는 물웅덩이는 수은같은 은색으로 일렁일렁 꿈틀댄다. 꺾어진 철골은 두텁게 녹슬어 울퉁불퉁 솟아있다. 전장에 내려오는 비. 무게도 온도도 없이 공기중을 떠돌며 대기를 재색으로 적신다.
멀리 <교회>의 첨탑이 흐릿하게 보인다. ST - 쉐이드 타임ㅡ의 하늘은 납같은 재색, 때때로 반짝이는 녹색의 섬광이 눈 끝에 비친다. 쌍방 모두 숨 죽인 진지는 구멍투성이의 콘크리트파편이나 뒤집어진 차량을 쌓아올려 만들어낸 탑이다. 전투용 트라이브 슈트는 항온기능을 지니고 있지만, 장시간 같은 자세로 있는건 이번 작전에 하등 도움이 안된다. 무릎을 굽혔다 펴며 뭉친 근육을 풀기위해 움직이던 순간, 무언가 시선에 사로잡힌듯 몸이 굳었다.
고양이.
그런 단어가 떠올랐지만, 뭔지 모르겠다. 스코프 화면은 녹색으로 깜빡이며, Category:Erorr/,표시를 반복하고 있다. 그것이 조금전까지 스캔하고 있었던 물체에 대한건지, 아니면 잔해위에서 이쪽을 보고 있던 그 시선에 대해선지, 그것도 모르겠다. 일순 주의가 흐트러진 동안 [그것]은 사라졌다. 표시도 사라졌다.
내리던 빗줄기가 다소 강해졌다.
「리더」
저격수의 낮은 목소리에 시선을 돌린다.
「하리Q가 와있어」
고개를 끄덕이고, 스코프의 시계를 조정한다. 배율이 올라가고, 대치하던 사면에 펼쳐진 적 세력의 실루엣이 크게 비쳐졌다. 배경으론 방치되어 검게 가라앉은 도시. 기울어진 빌딩과 전복된 장갑차량. 판별불가능한 콘크리트 파편들이 퇴적된 너머에는 이쪽과 마찬가지로 적의 해자가 파여져 있을 것이다. 은색의 비가 소리없이 쏟아져내린다.
광감지력이 강화됐다해도 야외전투에서 맨눈으로 적의 위치를 확인하는건 어렵다. 적도 같은 조건이다. 이쪽과 마찬가지로 강화된 시신경계와 오감을 지니고 있고, 주위에 녹아들기위해 카무플라쥬하고 있다. 시야를 열원감지로 전환한다. 재색의 시야에 붉은색과 오렌지색으로 빛나는 인영이 몇 개 떠오른다.
< 아사인멘츠>. 현시점에서 전투행위 중인 적 집단.
정보 보조 모니터 구석에 리더 <하리Q>의 자료 화면이 인풋된다. 실제 시야로는 아직 확인할수없지만 저격수가 와있다고 하면 와있을것이다. 기기의 능력을 빌리지 않고 적을 수색하는 능력으로 저격수를 따라올 자는 없다.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신중한 게릴라작전을 취하는 경향이 많은 하리Q가 오늘처럼 정면으로 선전포고 해오는건 드문 일이다. 그만큼 이번 사태에 불안을 품고 있단 거겠지.
불안.
즉, 데이터에 없단 말이다, 그렇게 생각을 수정한다. 전장은 중앙을 향해 약간 기울어진 사면 와지(窪地)였다. 콘크리트 파편이나 녹아내린 플라스틱 자재 덩어리가 요철이 많은 경사면에 무리지어 장해물인양 튀어나와, 필드를 구성하는 장소 한점을 형해 완만한 경사를 그리고 있다.
그 중간지점에 반쯤 무너져내린 고가도로의 잔해가 있다. 재색의 하늘에 검고 크게 튀어나온 그것이 스와디스타나와 무라다라의 전략적 경계선이다.
그 선을 사이에 두고 이쪽에 사십, 저쪽에는 약 육십여명의 부대가 전투개시 신호를 기다리며 숨을 죽이고 있다.
경사면에 보이는 컨테이너, 방치된것처럼 보이는 블록, 속이 빈 퇴적물은, 적의 전진지점이다. 열감지로는 보이지 않지만, 후방에서 들리는 음성 및 동작 리서치 결과가 각 전진지점에 각각 셋에서 여섯명가량의 보명이 배치되어있다는걸 알려온다. 통상 시야로 돌아와 관찰. 시야 끝에 그린 마킹이 희미하게 움직였다. 각 트라이브를 식별하는 색이다. <아사인멘츠>의 마킹. 그에 대한 <엠브리온>의 색은 밝은 오렌지.
<아사인멘츠>
<엠브리온>
한쪽은 스와디스타나 에어리어의 지배자, 다른 한쪽은 무라다라 에어리어의 지배자.
<교회>가 본거지를 둔 불가침영역 사하스라라 에어리어를 제외한 정크야드의 여섯 에어리어 전부를 지배하에 둘 때, 이 전쟁터를 봉하는 문은 열리고 승리자를 낙원 <니르바나>로 맞이한다. <교회>가 그리 말하니까 틀림없을 것이다. <카르마 교회>는 절대적인 심판자다.
무라다라, 스와디스타나, 마니프라, 비슈다, 아나하타, 아쥬냐, 그리고 불가침영역 사하스라라. 사하스라라에는 탑이 있다. <교회>의 새하얀 승병들이 살며, 그 정상은 낙원의 문과 이어진다는 거대한 탑이다. 그 꼭대기는 아득히 멀고, 비와 먼지 저편에 물에 젖은 잉크처럼 흐릿하다.
땅 끝에 선 탑이 굽어다보는 폐허의 전장에 지금 익숙치 않은것이 자리잡고 있었다.
Weight; Unknown
Material; Unknown
Objects; Unknown
Category; Error/
몇 번이고 스캔을 반복해도 같은 결과가 나올뿐이다.
높이 약 3.5미터, 폭 약 2미터. 위쪽이 뾰족하게 일그러진 구체로, 색은 광택없는 검정. 표면은 복수의 타원형 혹은 전체 형태와 마찬가지로 앞부분이 돌출된 비늘형태의 강판을 여러겹 겹쳐 만든것처럼 보인다. 복잡한 이음새에 때때로 녹색빛이 흐른다.
빛은 망형으로 물체 전체를 감싸고, 규칙적인 문양을 띄운다. 도관으로 추정되는 두터운 것들이 몇여개 지면을 향해 뻗어져, 물체를 지탱하고 있는것같다. 빛은 그 도관에도 흐른다. 빛이 감광할 때마다, 그것은 안개 같은 은색비 아래에 움직이듯 떨렸다.
꽃봉오리같다. 그렇게 생각한뒤, 즉시 그 불명의 코드를 소거한다.
「고양이」「꽃봉오리」
오늘은 정말 노이즈가 심하다.
『<엠브리온>에게 경고한다.』
확성기를 거쳐 껄끄러운 목소리가 적진에서 흘러나왔다.
『포인트 02A7-7B77845의 불명확 물체를 즉시 철거하라. 철거하지않을 경우 전투 의사가 있다고 판단, 공격을 개시한다.』
『<아사인멘츠>에게 경고한다.』
마찬가지로 완벽하게 평이한 목소리가 같은 경고를 상대에게 반복한다.
『포인트 02A7-7B77845의 불명확 물체를 즉시 철거하라. 철거하지않을 경우 전투 의사가 있다고 판단, 공격을 개시한다.』
귓가에서 호출음이 울린 다음, 후방에서 분석중이던 참모, 비숍 유닛으로부터 데이터가 전송된다. 흐르는 정보를 눈으로 쫓는다. 정보의 취급에 특화된 그에게도 문제의 물체의 정체는 Unknown인 모양이다. 짧게 대답하고, 수신을 끊는다. 시선은 적에게서 때지않고, 수신호로 전진명령을 내린다.
엄폐물의 그림자에서 발걸음 소리 몇 개가 교착한다. 슈팅 포지션을 취한 여저격수가 힐끔 고개를 들었다.
「병사를 대신할건 얼마든지 있지만, 리더를 대신할건 없어. 잊지마.」
밝은 핑크머리가 특징적인 그녀는 그저 그 말만을 입에 담았다.
답은 않는다. 새삼 확인할 가치도 없는 소리다. 트라이브간의 전쟁은 각자가 상대의 리더 유닛을 격파했을때 종료된다. 즉, 그 시점에서 전황이 아무리 압도적 우위에 있다해도, 트라이브 리더가 쓰러지면 거기서 패배가 확정된다. 병력이 충분한 거대 트라이브, 아나하타의 <솔리드>등의 리더는 결코 전면에 나서지않는게 통례지만, 지금의 <엠브리온>처럼 아직 신흥 부류에 속하고, 구성원 수도 적은 트라이브에선 리더 자신을 전력으로 치지않으면 전투가 성립되지않는 일도 있다.
애초에, 트라이브로선 신흥이면서 하나의 에어리어, 무라다라를 지배하에 둔 것이 이례적이다. 그걸 가능하게 한것은 리더 자신의 빼어난 능력과 그걸 떠받치는 간부 멤버 넷의 그에 뒤떨어지지않는 유능함에 있었다.
옆에서 라이플을 겨누고 있는 그녀 또한 그 중 하나다.
여성형은 남성형보다 체력이나 완력이 떨어지는만큼, 다른 부분에서 장점을 지닌 경우가 많다. 그녀의 경우 스코프를 사용하지않고도 확실히 적을 탐지, 저격할 대상을 발견, 일격으로 처리하는 시력과 집중력. 다른 두명은 각자 소대를 이끌고 좌우에 포진 완료. 후방에 있는 참모, 비숍도 데이터 분석이 끝나는대로 쫓아올것이다.
리더를 포함한 간부 멤버가 직접 전투에 참가하지않으면 안되는건 <엠브리온>의 약점이지만, 강점이기도 하다. 현 에어리어 무라다라의 지배를 쟁취해냈을때의 병력은 오십명 남짓이었다. 대부분을 간부 다섯명만으로 싸운것과 마찬가지다. 이처럼 고도의 능력을 지닌 유닛이 집결되어있는 트라이브는 좀처럼 없다.
홀스터에서 핸드건을 뽑는다. 노리쇠를 움직여 초탄을 송탄했다. 만약 전장에서 적 리더가 모습을 보이면 공격은 단숨에 그쪽으로 집중된다. 공교로이 잘만 움직이면 상대가 이쪽의 화력선에 노출되도록 유도할수도 있다. 혹은 하리Q 본인을 유인해내는것도 가능하겠지. 그때 자군의 공격력 전부를 단숨에 들이붓는다. 리더 하리 Q를 쓰러트리면 그 시점에서 전투는 종료다.
핸드건으로만 무장하고 적진으로 나서는건 통상 자살행위지만, 이 경우 동작에 방해가 될만한 무거운 총기는 피해야한다. 어설트 라이플이나 머신건등 중량이거나 총신이 거추적거려서 신속한 회피에 지장이 생기는 무기는 의미가 없다. 특히 이 작전의 미끼 유닛에겐 고도의 판단력과 신체능력, 최소한의 무장으로 몸을 지킬수있는 전투능력이 요구된다.
모든 조건을 만족하는건 <엠브리온>의 리더 본인 밖에 없다.
물론 리더가 죽으면 그 자리에서 패배라는 규정은 엠브리온에게도 적용된다. 즉, 리더 자신이 미끼가 되는 작전은 언제나 트라이브의 붕괴를 수반하는 위험한 도박인 것이다.
여성 저격수가 지적한것도 그거다.
리더가 사망한 트라이브의 구성원은 그 자리에서 항복, 승리한 트라이브의 새로운 구성원으로 편입된다. <엠브리온>도 그렇게 구성원을 불려왔다. 좀전의 그녀도 리더가 죽으면 주저없이 승리한 트라이브의 구성원으로 들어갈 것이다.
그것 역시 규정이다.
작전 개시를 고하기 위해 손을 든다.
은색, 눈을 하고 있었다.
문득 그렇게 생각했다.
「고양이」이야기다. 검었다. 긴 꼬리, 커다란 삼각귀, 긴 바늘같은 수염이 나 있었다.
ㅡ 아무래도 좋다
손을 내린다.
최초의 총성이 울러퍼졌다.
엄폐물 대신 삼고 있었던 콘크리트 벽을 걷어찬다. 기세를 붙여 돌진, 부츠로 내딛은 지면의 흙이 충격으로 튀어오른다. 화약 냄새와 열이 동시에 얼굴에 부닥쳤다. 한손으로 눈을 보호하며, 옆으로 구른다. <아사인멘츠>가 특기로 하는 공격은 오토 보우건등의 무기를 통한 사격이다. 관통력은 떨어지지만, 실탄 하나하나에 화약을 담아, 꽂힌 지점에서 폭발을 일으켜 주위를 한꺼번에 날려버린다. 폭발의 영향으로 튀어오른 자갈이나 모래등도 관통력을 지닌 살상수단이 될수있게 화력을 조정했다. 가벼움을 중시한 지금 이쪽의 무장에는 두부를 보호할만한 것을 몸에 걸치지않았다. 다른 장소야 어쨌든, 눈등의 감각 기관이나 손발에 부상을 입으면 크나큰 핸디가 된다.
옆으로 굴러들어 엄폐물 뒤. 숨쉴틈도 없이 다음 공격이 온다. 머리위로 닥쳐드는 폭약담긴 보우건의 화살. 직격당하면 물론, 근처에 낙하하는 것만으로도 데미지를 피할수 없게 된다. 상공 3m 이내로 접근하기전에 핸드건을 연사해 모두 피격한다. 시야가 눈부신 불꽃색으로 적셔진다.
폭발의 틈을 타 뛰쳐나온 회피 장소에 그슬린 금속 파편이 쏟아져 내려와 박힌다. 맹렬한 열풍이 맨얼굴에 들이닥쳤다. 피부를 노출한 부분엔 내열크림을 도포했지만, 물집이 생길것만같은 열이다. 제대로 맞았다면 살갗이 탄 분사체로 지면을 나뒹굴었을 것이다.
머리칼에서 그을린 냄새가 난다.
신체 주위 및 진행 방향쪽에 도달하려하는 화살을 열 개 정도 파괴. 탄창의 마지막 한발을 쏘고 다음 목표로 이동. 쌓인 폐자재 무더기뒤로 머리부터 굴러 숨어든다. 한 박자 뒤에, 공중에서 불꽃이 부풀어 올랐다. 피격된 화살이 주위를 휩쓸며 유폭을 일으킨다. 굉음과 폭음, 끓어오르는 아스팔트와 타는 살내음. 몇 명 정도 죽은것 같다.
탄창을 갈고 다음 표적을 찾아 주위를 둘러본다. 시야 끄트머리에 이쪽을 노리기위해 엄폐물에서 몸을 내민 적병의 모습이 언뜻 움직였다. 즉시 쏜다. 적이 아니라, 이쪽을 향해 날아오는 화살을. 밸런스의 중심을 정확히 꿰뚫린 화살은 태세가 무너지더니 곧바로 적의 엄폐물에 내리 꽂힌다. 폭발, 비명, 파괴된 엄폐물에서 연기를 피우며 구르듯 뛰쳐 나오는 적병 여럿.
허나 다음순간, 그 모습은 피를 뿜으며 쓰러진다. 작은 사격음은 뒤에서 들려왔다. 쇼킹핑크의 머리색을 한 여성. 저격수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탄창을 채우고, 지체없이 사격을 계속했다. 뛰쳐나온 적병은 모두 호흡한번 쉴 겨를없이 시체로 변해 바닥을 나뒹군다. 단락적으로 이어지는 발사음이 들렸다. 옅은 블루색 머리를 복잡하게 땋은 작은 체구의 보병 유닛이 대충 거며 쥔 서브 머신건을 세미오토로 연사하면서 사면을 미끌어져 내려온다. 그 뒤에서 그가 이끄는 소대들이 뒤를 따른다.
동시에 반대쪽 진지에서도 별동대가 미끌어져 내려왔다.
이쪽을 통솔하는건 재색의 풍경속에서도 선명하게 눈길을 끄는 붉은 머리를 한 공격수, 어택커 유닛이다. 넓은 어깨위에 그레네이드 런쳐를 얹고 있다. 발사, 발화, 폭발. 착탄지점에 있던 적병 몇 명이 휩쓸려 날아가고, 지면에 움푹 들어간 새카만 구멍을 남긴다.
저지에서는 그린 마킹과 오렌지 마킹이 난입중이다. 붉은 머리칼의 공격수는 일단 정지, 앞으로 나오려드는 적을 그레네이드로 견제. 서브머신건의 일제사격이 이를 원호한다. 상황을 눈으로 확인하면서 안구내의 마커확인 기능을 기동. 적의 수는 현재 32명. 이쪽은 22명. 예상했던것보단 잘해주고 있지만, 원래부터 지닌 전력차와 원거리 전투를 주력으로 하는 적에 대항하는데엔 시간이 너무 걸린다. 자군이 하나 사망(로스트). 남은 수 21명. 적 리더는 어디있지?
서치 상태로 복귀하는데 다소나마 타임 로스가 있었다.
복귀한 순간, 머리위 50cm 부근에 적 보병 감지. 마킹을 벗고 조금씩 이쪽으로 접근하고 있었던건가. 요격태세를 취하기위해 손을 뻗지만, 막 탄창을 갈아넣은 핸드건을 들어올리는게 늦다. 이쪽을 바라보는 크게 뜨인 눈. 상대의 안구에 마찬가지로 눈을 크게 뜬 은색 청년의 모습이 비친다.
다음 순간, 시야밖에서 발사된 총탄에 보병은 피거품과 뇌장(腦漿)을 뿜으며 시야에서 사라진다. 다시 핸드건을 고쳐쥐고, 이어 오는 2명의 복병의 미간을 각각 쏜 다음, 다음 지점으로 회피. 귓바퀴에 장착한 인컴이 잡음을 낸다.
사면 위에 어설트 라이플을 손에 거며든 남자가 스코프에서 얼굴을 땐다. 눈은 선명한 녹색. 후드로 감춘 머리색도 같은 색이다. 참모, 비숍 유닛.
『하리Q의 존재를 이쪽도 확인, 주의해라, 리더.』
이어 위치 정보가 전송된다. 그걸 따라 스코프를 조정, 확대 모드로 전환해 적진을 관찰한다. 콘테이너 뒤에 적동색을 띈 머리칼이 움직였다. 캡처한 화상을 확대, 화상처리를 가한다.
분명치않은 윤곽이 또렷해지고, 메마른 남자의 딱딱한 옆얼굴이 된다. 어깨와 눈밑에 그린 마킹. 충분하다. 채취한 영상과 자료 영상을 조합, 하리Q 본인임을 확인.
타켓 포착. 남은건 얼마나 효율좋게 대상을 끌어내는가다. 적의 공격이 끊기는 틈을 기다리며 선택해야할 최선의 루트를 사고한다.
ㅡ 그때, 그게 일어났다.
2
하얀 빛이 전장을 내달렸다.
처음엔 그걸 폭발이 일으킨 하레이션으로 해석했다. 하지만 다음 순간, 인컴에서 엄청난 굉음이 울리더니, 침묵했다. 스코프에 격한 노이즈가 튀더니, 명멸을 반복했다. 흘러들어오던 정보는 순간 끊겼다.
하리Q가 보였다. 포화 역시 침묵하고 있었다. 노이즈. 적 리더는 비틀거리듯 완충물 앞으로 나와 등을 굽히더니, 두 팔을 뻗었다. 노이즈. 노이즈.
『뭐냐, 이, 것은』
잡음섞인 목소리는 도중에 꿀렁거리는 신음으로 변했다. 목을 긁으며 무릎 꿇는다. 구토하듯이 몸을 꺾는다. 굽혀진 등이 마치 다른 생물인양 준동한다. 살이 찢어지는 질퍽한 소리가 들렸다.
노이즈. 노이즈.
노이즈.
하리Q는 절규했다. 쟈켓 등부분이 부풀어오르더니, 안쪽에서 무언가가 튀어 올랐다. 검은것이 일섬한다. 가까이 있던 <아사인멘츠>의 구성원 위를 한번 스치고 지나간다. 문득 절규가 그치더니, 희생자가 뒤로 엎어진다. 어깨위가 없었다. 일순의 시간이 지나자, 푸왁하고 피가 뿜어져 나왔다. 물웅덩이가 걸죽하니 탁한 진홍색으로 젖어든다.
적의 새로운 공격인가. 허나 그렇다면 하리Q의 모습을 이해할수없다. 새로운 적의 난입인가. 무수한 가능성이 뇌리를 스친다. 어느 하나 적합한 것이 없다. 몸을 숨기고 온갖 가능성을 취사선택해나간다. 인컴을 통해 후방을 호출했지만 답이없다. 발포음은 아직 들리지만, 교전 상황은 아닌것 같다. 경계를 늦추지 않으며 엄폐물밖으로 살짝 고개를 내밀고 들여다본다.
「꽃봉오리」가 열렸다.
전투 중, 내내 침묵했던 그 기묘한 물체는 그 어느 세력에도 속하는 것도 아니며, 전투적 위협이 되지않는다는 판단하에 이제까지 거의 지각 밖에 두었었다. 그게 지금 이상한 레이저 병기나 클래스터 폭탄처럼, 무질서한 간격으로 꿈틀대며 의미불명의 명멸을 고속으로 반복하고 있다.
닫혀있던 검은 편린은 모두 외측으로 벌려져, 그 반상(盤床) 위에 셀 수 없을 정도로 무수한 푸르스름한 빛의 군체가, 궤적을 그리며 어지럽게 회전하고 있었다. 하나하나를 직시하는건 불가능하다. 때때로 빛의 일점이 회전을 견디지 못한듯 군체에서 튕겨나와 어디론가로 날아간다. 혹은 도망치는게 늦어 웅크린 인간들을 덥친다. 꿰뚫린자들은 예외없이 몸부림치며, 경련을 일으킨다. 지면에 뿌리박은 두터운 도관은 두근두근 맥박치며 섬광을 발하고, 녹색을 띈 빛무리를 피처럼 주변에 흩뿌린다.
회전하는 빛, 노이즈.
그리고 노이즈. 노이즈.
자군에 철수 명령을 내리려했지만, 인컴은 귀를 찢을듯한 잡음을 내며 커맨드를 듣지 않는다. 위험을 깨달은 구성원들이 자주적으로 후방으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허나, 이상 사태에 대응 가능할만한 빠르기는 아니다. 어떤 자는 최초의 희생자와 같은 운명에 이르러 목이나 손목을 잃고 쓰러졌고, 어떤 자는 리더와 마찬가지로 날아드는 푸르스름한 광탄에 꿰뚫려 지면을 구른다. 발포음은 사라지고, 일대는 물체가 발하는 빛과 아슬아슬하게 가청영역에 이르러있는 회전음으로 가득찬다. 고막으로 침입해 들어온 무언가가 촉수로 뇌를 갈기갈기 찢어발기는것만같은 격통에 신음한다. 손에서 핸드건이 떨어졌다.
무언가가, 변모가, 시작되고 있다. 하리Q가 울부짖고 있다. 굽혀진 등에서, 혹이 잔뜩 박힌 다관절의 팔이 2개 뻗어져 나왔다. 그것들은 각기 전혀 다른 의식을 지닌것처럼, 격하게 몸부림치고 있었다. 여기저기서 날개가 펄럭이고, 뿔이 솟아나고, 흉악한 손톱이, 비늘이, 체모가, 몸이 떨리고 뒤틀리더니, 기어나오려한다. 경련하는 육체가 인간 이외의 뭔가로 변형되어 간다. 두렵지만, 어딘지 매혹적인 형상, 뒤틀려진 이형의 군상으로.
느닷없이 인컴의 잡음이 사라지고,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리더, 엎드려!!』
그 부름에 처음으로 일어서 있던것을 깨달았다. 가슴에 강한 충격이 느껴졌다. 쏘였다, 단순히 그렇게 느꼈다. 심장. 틀림없이 치명상이다. 적의 것인지 아군의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누군가가 무차별적으로 쏘아댄 총탄이 전투 슈트의 흉부를 꿰뚫었다. 느릿하게 발치에서 힘이 빠지더니, 무릎을 꿇었다. 뿜어져나온 피가 서서히 지면을 적셔가는걸 본다.
오랜시간으로 느껴졌지만, 블랙 아웃한 스코프에 간신히 남아있는 시각 표시상으론, 거의 1초도 지나지 않았다. 다음 1초뒤엔 이미 죽었을 것이다. 붉은 표시가 자신의 남은 시간을 카운트하는것을 그저 바라본다.
노이즈.
새하얀 광구가 이쪽을 향해 날아온다. 피해야한다. 허나, 그럴 힘은 이미 없다. 시간도 없다. 사라지기 직전의 의식이, 다가오는 빛속으로 빨려들어간다.
회전하는 빛의 무리가, 높은 소리와 함께 작열하듯 사방으로 흩어졌다.
하나의 환상이, 정면을 향해 떠오르고 있었다.
전체적으론 휴머노이드로, 거울에 비쳐진 형상이였지만 역시 인간이 아니다. 이쪽을 바라보는 얼굴은 크리스탈 세공품을 연상시키는 무수히 투명한 육면체의 얼굴이었다. 곤두선 머리칼은 반쯤 유액으로 되어있고, 쉼없이 맥박치면서 무지개빛 물보라를 뿌리고 있다. 마찬가지로 반투명한 팔꿈치나 복사뼈에서 흘러넘치는 에너지가 용솟음치는 파도가 되어 미끈하고 늠름한 신체를 도도하게 감싸고 있었다. 장착하고 있던 스코프에 다시 노이스가 치솟더니, 프로세서가 문장 하나를 출력했다.
<Om Mani Padome Hm>
옴, 연꽃 속에 있는 진주여, 훔
이어 그 형체는 녹아들듯 무너지더니, 하나의 단어로 응고됐다.
<Varna>
수천(水天)
그리고 환상은 돌연 육체ㅡ 자신의 안으로 스며들더니 사라졌다.
유입되어오는 압도적인 힘의 감각. 쥐어짜낸 호흡이, 하염없는 비명이 되어 입밖으로 새어나간다. 세포 하나하나에서 소폭발이 일어난다. 자신이 다른 누군가로 바뀌어져 가는 것을 느꼈다. 피부 밑으로 힘이, 수은같은 은색으로 물결치며 흘러간다.
지금 그는, <그>는, 웃고 있었다. <웃고 있었다>. 웃음, 불길하게 울러퍼지는 웃음. 폭풍치는 바다 깊은 곳에서 끓어오르는 굉음과도 닮은 홍소(哄笑)였다.
등뒤에서 흑색의 촉수가 으르렁거리며 덤벼든다. 목줄기를 휘어감기 직전에 그것을 움켜쥔다. 어린아이가 내지르는 주먹을 막아내는것보다도 쉽다. 움켜쥔 주먹 속에, 뼈와 힘줄이 종이처럼 짓뭉개진다. 고통과 당황, 그리고 선명한 공포가 전해져와서 즐거워진다.
<적>이 이쪽을 보고 있다. 겁에 질린 눈이다. 좋은 일이다. 피아(彼我)의 힘의 차이를 알고 있다.
손안에는 아직 뭉개진 살과 뼈의 잔해. 몸부림치는 그것을 잡아 당기며, 천천히 발을 내딛는다. 혀끝에서 저주<만트라>가 욱씬댄다. 응축된 힘. <물>의 지배자.
은(銀).
그리고 진홍.
비가, 내리고 있었다.
(비……)
그칠줄 모르는 비. 정크 야드의 비.
죽은자들이 남긴 육체는 해석되어, 하늘로 올라가, 비가 되어 흘러떨어져 <카르마 교회>의 지하에 이른다. 거기서 싸움 와중 쌓은 <카르마[罪業]>을 정화받고, 새로이 다시 태어난다. 이 세상에. 싸움터에. <교회>의 가르침은 그렇게 말한다.
눈앞에 든 손을 찬찬히 움직여본다. 배경으로 보이는 재색의 하늘은, 변함없이 어둡고, 무겁다.
(정크야드. 싸움……. 비……. 빛………, 손)
ㅡ 손
내, 손.
나.
<서프>
문득 누군가가 맨손으로 심장을 움켜쥔것만 같았다. 낮은 소리를 내며 서프는 각성했다. 그것은 신속하고, 갑작스러웠다. 동시에 주위의 사물이 기묘할 정도로 확실한 상을 맺었다.
적은 없다. 아군의 모습도 보이지 않는다. 조용하다. 벗겨진 인컴이 지면에서 무의미한 신호음을 울리고 있다. 라이플로 추정되는 뒤틀려진 잔해가 발치에 닿았다.
누군가가 허리에 손을 둘러 몸을 일으켜 세우려하고 있다.
「히트.」
다부진 손바닥의 감촉으로 상대가 누군지를 알고, 서프는 불명료하게 중얼거린뒤 몸을 일으키려했다. 그 순간, 미적지근한것이 목구멍으로 치솟아 올라와 토했다. 오래된 오일같은 적갈색의 액체가 지면으로 뚝뚝 떨어진다.
쭈그려 앉아 토악질을 하고 있는 동안 히트는 말없이 어깨를 받쳐주었다.
하늘은 옅은 마젠타로 변해가고 있었다. LTㅡ라이트타임ㅡ이 가까운것 같다. 어느새 시간이 그렇게나 지난건가. 그 수수께끼의 물체는 그림자조차 없었다. 좀전에 있었던 일이 마치 거짓말처럼, 첩첩히 쌓아올린 폐자재, 쓰레기더미의 산엔 아무런 인적도 없다. 모두 해산했다.
「미안」
겨우 입을 닦고, 서프는 말했다.
「모두는 어찌됐지」
「무사해. 병대는 죽었는지 도망쳤는지 누구하나 안보이지만.」
히트는 손을 때고, 조금 먼 곳의 패인 지형 일대를 만연히 검지로 가리켰다.
「신경쓰지마, 전부 그래.」
「이렇게 됬단건가.」
히트는 고개를 끄덕이고서 미간을 찌푸리며 침을 뱉었다. 서프는 천천히 일어서, 다시 엄습해오는 토기를 억지로 삼킨다음, 기침했다.
「<아사인멘츠>는 어디 갔지? 철퇴한 건가?」
「몰라」
히트는 짜증스러운듯 고개를 저었다.
「내가 눈을 떴을땐 없었어. 아무도 없어. 남은건 우리들 뿐이야」
그 목소리엔 타인을 불안케하는 울림이 희미하게 섞여 있었다. 서프는 무의식중에 가슴을 더듬어, 슈트에 뚫린 그을린 탄흔을 찾았다. 역시 그 전투와 이변은 꿈이 아니었단 증거다. 입안 가득히 타르가 칠해져 있는 느낌이다.
냄새.
혀가 마비될것만 같은 맛.
위화감을 느꼈다.
「히트…, 너 히트지?」
「당연한 소릴」
바보같은 소리, 하고 깔보는 어조였다.
「난, 나다. 아직 잠이 덜깬거냐, 서프. 알지라와 게일은 저쪽이야.」
알지라. 게일.
순간 시야가 기분나쁘게 일그러지는 느낌이 든다. 휘청인다.
알지라. <엠브리온>의 여성저격수.
<알지라>는 그녀를 표하는 이름, 코드. 그리고 <게일>. 마찬가지로, 분석과 작전 입안을 담당하는 참모, 그린의 머리칼과 눈을 한, 과묵한 그를 표하는 이름.
그리고 히트는 트라이브 제일가는 전투능력을 자랑하는 공격수. 리더인 자신과 필적할 정도로 유능한 엠브리온의 No.2다. 놀랄 건 없다. 지금까지 쭉 함께해온 <엠브리온>의 간부멤버다.
「서프」
히트의 붉은 눈이 지극히 가까운 거리에 있다. 마치 살피듯 서프를 들여다보고 있다.
「괜찮은거냐? 기분이 나쁜거라면 다른 녀석들을 여기로 불러모으지.」
「아니, 됐어. 아무것도 아냐.」
고개를 젓고, 기묘한 현기증을 억지로 털어낸다. 묘한 느낌이었다. 스코프의 배율을 과하게 올린것만같은, 아니, 신경의 예기를 극한까지 끌어올린것만같은 감각이 전신을 지배한다. 갑자기 알몸으로 세계에 내던져진것처럼, 혹은 지금까지 그 존재조차 생각치 않았던 신경을 감싸는 옅은 보호막이 벗겨져나간것처럼.
두 팔을 움켜쥔 히트의 손끝에서 열기를 느낀다. 몸에 닿는 빗방울을 느낀다. 전장에서 죽은 자들이 비가 된단걸 깨닫자, 기분이 나빠진다.
녹슨 철의 냄새가 난다.
「에, 어라? 여기, 어디야? 나, 어째서ㅡ 우와앗?!」
어디선가 높은 목소리가 들리더니, 소리는 놀란듯 한층 더 높아졌다.
「누, 누구야, 이건.」
「시에로다.」
「녀석도 무사한가. 가자.」
<시에로>. 간부 멤버중 최연소인 노말, 보병 유닛. 그의 이름(코드). 그래, 그렇다. 확인할 필요조차 없다.
「리더 무사해?」
시에로의 목소리를 들은듯 알지라와 게일이 폐자재더미 저쪽에서 모습을 내민다. 게일은 평상시와 전혀 다를바없는 얼굴이다. 후드 밑 그림자가 드리워진 녹색 눈으로 주위깊게 주변을 살피고 있다. 알지라는 심하게 동요하고 있는것 같았다. 흐트러진 핑크색 곱슬머리를 신경질적으로 정돈 중이다. 라이플이 없는 그녀는 실오라기하나 걸치지 않는 것보다 불안해 보였다.
「리더, 대체 무슨일이 생긴거야? <아사인멘츠>는? 다른 부대원은? 그 이상한 검은건 대체 어딜 간거야?」
「현재 주위 3km이내에 해당 물체로 추정되는 것은 발견할 수 없다.」
평탄한 목소리로 게일이 말했다.
「주위 5km이내에 생명 반응을 보이는건 발견되지 않는다. 트랩의 존재도 미발견. 여기있는건 우리들 뿐이다. 공격당할 위험성은 없으리라 판단된다.」
「당신은 좀 조용히 해」
알지라가 짜증스러운듯 말을 가로막았다.
「공격같은 문제가 아니라고 몇 번 말해야 알겠어? 난 무슨 일이 일어났건지 알고 싶어. 어때, 리더. 뭔가 기억하는거 있어?」
「아니. 나도, 히트도, 모두와 마찬가지다. 아무 기억도 없어.」
알지라의 몸에서 힘이 빠졌다. 서프는 게일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교회>의 기록에 액세스할수없다.」
시선의 의미를 이해한 게일이 대답한다.
「노이즈가 심하다. 아무래도 내 임플란트에도 뭔가 영향이 미친 모양이다. 거점으로 귀환해, 태세를 재정비할것을 제안한다. 모두 피로한 상태다. 또한, 판단을 내리기 위해선 더 많은 정보가 필요하다.」
「그게 좋을것 같군.」
서프는 알지라를 봤다. 새파란 얼굴로 입을 가린채 구토감을 참고 있다. 기분이 나쁜건 모두 마찬가지인 모양이지만, 체력이 뒤떨어지는 알지라에겐 특히 그 영향이 큰 모양이다. 체력이 떨어진다, 그런 생각이 떠오르자 자연히 최연소 보병이 떠올랐다.
「그렇지, 시에로. 녀석은 어디지?」
시에로가 있었던건 그 물체가 있었던 장소 근처였다. 폭발의 영향 때문에 부풀어올라 다소 높아진 지면의 정상 근처에, 마젠타의 하늘을 등지고 작은 체구 그림자가 무릎을 꿇고 있다. 경계하면서도 목을 빼 뭔가를 들여다보는듯한 자세였다. 서프는 다른 멤버를 데리고 빠르게 경사를 달려 올라갔다.
「시에로, 왜 그러지? 뭔가 있나?」
「리더.」
시에로는 휙하고 서프를 돌아다봤다. 둥글고 큰 눈이 끔뻑인다. 작은 체구의 노말, 보병 유닛은 푸른색 땋은 머리를 흔들며 튈듯이 일어나더니, 날아들듯 달려와 그제까지 보고 있던 커다란 구멍의 바닥을 손가락질했다.
「저거」
물체가 있었을 장소엔 직경 10m에 가까운 원형의 깊은 구덩이가 생겨 있었다. 깊이도 사람의 신장 정도 되겠지. 초고열을 발하는 병기같은것이 작열한 것처럼, 주위의 퇴적물은 녹아 유리화되었고, 응고된 표토가 흐르듯이 검게 빛나고 있다.
그 움푹 패인 바닥에 한사람의 인간이 몸을 둥글게 말고 드러누워있었다.
옷을 입지 않았다. 메마른 몸매의 소녀다. 작게나마 부풀어오른 몸의 윤곽이 겹쳐모은 팔사이로 엿보인다. 피부는 새하얗고 도자기처럼 상처하나 없다.
「누, 누구야, 이건?」
알지라가 동요의 소리를 냈다. 서프는 한쪽 무릎을 꿇고서 꼼꼼히 안쪽의 상태를 살폈다. 트랩의 흔적은 없다. 확대와 모니터링 기능을 기동해 서치. 확인한바론 무장도 없고, 인체를 가장한 병기도 아닌것 같다. 특별한 점은 아무것도 없다.
전장의ㅡ 전장이었던 장소 한가운데에 아무런 무장없이 전라로 드러누워있단점 말고는.
머리칼은 검정. 검정. 속으로 반복해 말하자, 기묘한 느낌이 들었다. 정크야드의 인간은 제각기 다양한 머리색과 눈을 하고 출산된다. 서프가 은(銀). 히트가 적(赤). 알지라가 핑크. 시에로가 블루. 게일이 녹색. 이처럼 머리칼과 눈동자는 같은색으로 통일된다. 서프가 아는한 지금까지 검은 머리를 한 개체가 출산됐단 데이터는 단 한번도 없다. 누구도 입을 열지 않는다. 게일조차 어떤 수단을 취해야할지 제안할 수 없는 모양이다. 이렇게 가만히 있어봤자 상황은 달라지지 않는다고 판단한다. 서프는 불연듯 일어서, 몸을 내밀어 구덩이의 외곽을 밟아 내딛었다.
동료들의 경악소리를 무시하고 신중히 구멍바닥으로 내려간다. 부츠 밑으로 융해된 유리막들이 소리를 내며 으깨진다. 그 물체가 뭐였든 간에 믿을 수 없을 정도의 고열이 여기서 발산됐음은 틀림없다. 그 잔열이 내려 쏟아지는 빗줄기속에 옅은 증기를 피우고 있다. 유리화된 퇴적물은 아직도 뜨거워서, 슈트의 단열기능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희미한 열기를 전해온다.
(하지만, 화상은… 입지 않았어)
손을 뻗어 소녀를 안아 올리자, 놀라울 정도로 가벼웠다. 체구 자체가 정크 야드에서 생각해볼 수 없을 정도로 가늘고 작다. 근육자체가 거의 없는 것이다. 정크 야드의 주민으로선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여기선 어떤 인간이라도(시에로처럼 출산된지 얼마지나지않는 연소자라도) 나름의 체력과 근력, 전투능력을 지니고 이 세상에 태어난다.
그만한 고열 속에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그 피부는 차갑고, 희미한 습기마저 띄고 있다. 머리를 쓸어 올리자, 작은 얼굴이 드려났다. 긴 속눈썹도 머리칼과 마찬가지로 검은색으로, 그린듯한 붉은 입술이 뭔가를 참는듯 굽게 다물어져있다. 짧게 깍은 머리칼이 은색의 비에 젖어 머리에 달라붙어 있다.
「알지라, 뭔가 걸칠만한걸 던져줘. 거점으로 데리고 돌아간다.」
「위험하지 않을까?」
내키지 않아 보이는 알지라의 답에 다시 한 번 서프는 품안의 소녀를 내려다봤다.
성가신걸 떠맡으려 드는건가, 자문한다. 하지만 뭔가 자그마한 것이 뇌를 찌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극히 사소한 느낌이었지만, 그게 서프에게 이 소녀를 내버려둬선 안 된다고 속삭여오고 있다.
어디선가 알고 있던 소녀다. 그런 느낌이 들자 머리를 가로저어 부정한다.
정크야드에는 엄밀히말해 비전투원이란 없다. 보급 스테이션이나 공방등에 배속된 인원은 거의 전부 어떤 트라이브에 소속되어있는 2차 전투원이고, <교회>의 수도사들은 절대불가침의 존재다. 애초에 그들을 전장에서 발견하는 일 자체가 있을수없다. 정크야드에서 가장 통치자에 가까운 그들은 트라이브간의 최종조정자로서, 어떠한 전투행위에서도 절대적인 고고함을 유지하고 있다. 게다가 <교회>에 여성수도사가 있단 소리도 들어본적 없다.
소녀는 서프의 가슴에 기대어, 느릿하고 깊은 숨소릴 내고 있다.
「어쨌든 여자는 여기에 있던 물체와 뭔가 관계가 있을지 몰라.」
서프는 망설임을 끊어내듯 말했다.
「어쩌면 그 뒤 일어난 일과도. 깨어나면 뭔가 정보를 얻어낼 가능성도 있어. 망토다, 알지라. 그리고 와이어를 내려줘. 이걸 짊어지고서 사면을 오르는건 불가능할것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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