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작품 및 SS에 등장하는 사상 및 이야기 및 그 외의 모든 것들은 번역자인 저 자신과 뜻을 같이 하지 않습니다. 이제보니 이 SS의 공략캐 자체가 작중에서 특히 그런 포지션인 것 같습니다만...
첨엔 관심을 가졌는데 이 겜은 아웃이 될 듯…. 그리고 제목인 남양입니다만 끔찍함을 위해 그대로 남겨둡니다...... 하하..
* 추가 본문에 나오는 소재인 흰독말풀/조선 나팔꽃에서 '조선'이라는 단어는 특정 지역이 아니라 해외에서 들어온<<으로 으레 사용되던 접두사라고 합니다...라는 데 정말 이유는 불명. 어떻게 판단할진 애매하지만 제1차세계대전이 배경인 작품에서 소재가 조선 나팔꽃이라는 점이라던가 제목에 남양<<을 쓴다던가 여러모로 판단은 개인에게 맡깁니다만 찝찝함..
누군가가 뒤를 밟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내 보폭에 맞춰, 언제부턴가 세발짝 뒤를 따라 걷고 있다. 하지만 뒤돌아 보면 아무도 없다. 푸르르게 흐르는 닛코바시 강. 숲에선 매미 소리가 들렸다.
조용하면서도 자연은 시끄러웠다.
지금 건 분명 내 착각이겠지. 그러자 산토끼가 내 옆으로 잔가지를 밟고 지나갔다.
같은 소리가 들렸다.
여기에 사람은 나밖에 없다. 강의 흐름을 따라, 다시 길을 걸었다.
셔츠를 펄럭이며 가슴께를 식혀보지만, 바로 몸은 땀에 젖는다.
다행히 길은 그늘졌으나, 오늘 날씨는 더웠다.
입술이 말랐다. 혀로 축이니, 짜가운 소금맛이 났다.
뇌가 녹아내리는 줄 알았다. 전부 녹아버려도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견딜 수 없이 화가 났다.
갈 데 없는 분노가 '갈 데까지 가'하고 내게 명령을 내렸다.
누가 무슨 소릴 하든 집으론 돌아갈 마음이 없었다.
이 강처럼 되어주마. 끝에가서 폭포가 되든, 바위에서 투신을 하게 되든 상관 없다.
조용히 흙에 스미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이제 절대 멈춰서지 않으리라.
막 그렇게 맹세하던 찰나 목이 말랐다….
나를 움직이는 것은 낮에 마신… 한 잔 물뿐.
집에서 걸어나온지 벌써 1시간……. 아니 15분 정도일까. 이 시계는 정확하다.
아직이다. 집은 아직도 가깝다. 좀 더 걸어야 하건만 몸이 무겁다.
우선은 보급이다.
나는 강가로 다가가 두 손으로 물을 떠 마셨다.
그 맛있음에 배고픔이 치밀었다.
"……."
수면에 비치는 나는 나답지 않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입술은 불안한 양 처지고, 미간에 주름이 져있다.
줄곧 이런 표정이었나?
그 덕에 긴장을 풀었음에도 불구하고 주름 자국이 남았다.
하지만 쉬고 있을 여유는 없다….
잡념을 털어내기 위해 일어섰다가, 문득 이 강의 흐름이 무서워졌다.
어제는 비가 많이 내렸다. 저수지의 물꼬를 터서, 그쪽의 물이 이곳 강으로 흘러들어오고 있었다.
"?!"
이번엔 확실하게 자갈 밟은 소리가 들리더니, 동시에 등뒤에 감촉이 느껴졌다.
"하나자와!!"
"!"
탁하고 두 손바닥이 날아온다.
정말로 사소하고, 가벼우며 별 뜻없는 장난이었을 텐데.
놀라 다리가 엉켜 나는 강에 빠지고 말았다.
"타마모리!"
"하나자와?!"
다행히도 강은 옅었다.
"괜찬……?!"
버티고자 힘을 넣은 순간, 미끄덩하고 발이 미끄러졌다.
수면에 빛이 닿아서, 해초가 자랐나보다.
눈깜짝 할 사이에 강 깊은 곳으로 끌려들어간다.
조금 전의 명랑했던 목소리와 달리 절박하게 내 이름을 부르는 타마모리.
"오지마"하고 외친 직후, 나는 닛코바시강의 일부가 되었다.
**
처음엔 귀가 들리지 않게 되었다.
시야는 물색에서 푸른 색, 푸른 색은 검정이 되었다.
물에 젖은 화선지처럼, 전신의 의식이 조각조각난다.
왜일까.
당연했던 매미 소리가 들리지 않게 되면, 시끄러웠던 더위가 멀어지면…
그 순간 그것들이 그리워지는 것은…….
"!"
검은 색에서 빨강으로 시야가 일변했다.
방금 전 물에 풀린 화선지와 착각할 정도로, 옅은 구름이 머리위에 있었다.
"하나자와…?"
"타, 타마모리……"
"아… 악의는 없었어…."
입을 열자마자 변명이냐. 나는 후하고 웃고 말았다.
타마모리는 내가 화낼거라 생각했던 거겠지.
자갈 위에 정좌한 자세로, 아픔과 후회의 눈물을 참고 있었다.
"정좌는 관둬. 원망 안 하니까."
"……."
"타마모리…."
반신을 일으키자, 딱 눈높이자 맞는다. 하지만 타마모리는 줄곧 고개를 숙인 상태다.
무릎을 찔러주자, 허리까지 쥐가 난 걸까 바로 자세가 무너졌다.
"으…."
"나 따라 왔어??"
"어……."
그럼 그 발소리는 타마모리였을까?
살금살금 타마모리 답지 않다. 평소라면 장소 불문하고 건드렸을 텐데.
접근하기 힘든 무언가가 내게 있었던 걸까.
"내가 혼자였던 거… 아무한테도 말하지마."
"할 거야."
"?!"
이번엔 확실히 내 눈을 들여다본다.
"혼자 어디 가려고 했어."
"산책."
"음……."
물에 빠진 건 나인데 타마모리의 삐진 얼굴을 보고 있자니 내가 나쁜 것 같아졌다.
"혼자 즐거운 곳으로 갈 거야?!"
"안 가."
"으으음…."
고개를 돌려 강쪽을 보았으나, 마주 보는 것 이상으로 진한 시선을 느꼈다.
나도… 혼자서 끌어 안고 있을 수만은 없게 되었다.
"어머니랑 싸웠어."
"뭐라고?!"
"………."
"말해!"
"적게 먹는다더라. 아무리 먹어도 그걸론 부족하다고 하셔."
"그런 걸로? 냐하하하핫."
"그러니까 집을 나가려고. 내가 없어진 후로 쌀이 넘쳐나서 곤란해 하라지."
"그런 걸로?! 냐하하하하핫!!"
울고 있는 줄 알았는데 휙하니 표정이 달라지는 타마모리.
평소엔 그 표면에 놀라기만 했지만, 이번엔 부끄러워졌다.
그는 눈을 반짝반짝 빛내고 있다.
그것도 무구한 게 아니다. 약점을 찾아내고서 히죽거리는 눈이다.
차마 볼 수 없는 얼굴로, 좀 더 내게 접근한다.
"하나자와한테도 그런 구석이 있구나! 나는 너무 많이 먹는다고 혼나는데!"
"밥이 모자른 거 같으면 언제든 우리집으로 와라."
"!!"
"가족 전원 환영해."
"냐하하핫!"
가족 전원은 농담이었다. 타마모리는 의기양양하게 일어나, 원래왔던 길을 뛰어 돌아간다.
한마디 괜히 더 했나 싶은 초조함이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라도 말하지 않았더라면 훨씬 더 끈덕졌겠지….
타마모리의 할아버지가 타일러 주시면 좋겠는데.
"타마모리, 잠깐만."
"?"
"그 꽃은 뭐야?"
새하얀 꽃을 들고 있었다. 내가 타마모리에게 다가가자, 두 손으로 움켜쥔 채 놓으려 하지 않았다.
뭘 그렇게 싫어하는지 모르겠지만, 천천히 손가락을 풀어 보니, 새하얀 나팔꽃 세송이가 시들시들하니 손 안에 있었다.
꽃에는 마음이 담겨져 있다고, 셋째 누나가 말했다.
말이 있으며, 뜻이 있다. 한송이라도 갖고 오면, 그 의미를 가르쳐준다고 했다.
"왜 숨겼어…?"
"……."
당연히 타마모리가 꽃말 같은 거 알리가 없다.
나는 진귀한 꽃을 보고 호기심에 물었으나, 타마모리의 눈가가 축축해지기 시작했다.
"이건 <공양>이야…."
"고, 공양…?!"
"죽은 줄 알았거든…. 그래서 꽃을 꺾어왔어…."
"그래…? 예쁜 색이네."
"아무리 말을 걸어도… 줄곧 차갑기만 하니까……."
마침내 눈물을 흘리는 타마모리.
이걸 어째야 하나.
넘어졌으면 상처를 씻으면 되고, 혼난 거면 달래주면 된다.
유령을 봤다면 그를 쫓아내주면 되지만….
이번엔 내가 원인이니까 뭘 해야할지 모르겠다.
"………"
간단한 건 있다.
내가 살아있다는 걸 전해주면 된다.
그러면 타마모리가 두려워하는 죽음은 멀어지고, 무서워할 건 아무것도 없다는 걸 알게 되겠지.
그리고 나를 볼때마다 오늘 일을 떠올리며 우는 것도 곤란하다.
"그꽃 나한테 줘."
"응……."
역시 주저하면서 내 손에 올려준다. 그것을 주머니에 넣었다.
양팔로 타마모리를 끌어 안았다. 처음이었다.
품안에서 좌우로 회전하는 타마모리.
이상한 움직임에 얼이 빠졌으나, 달아나지 못하도록 힘을 담았다.
그리고 작은 오른쪽귀에 내 가슴을 갖다댔다.
오랫동안 물속에서 숨을 쉬지 못해서 그런지, 폐가 호흡한다. 심장이 고동쳤다.
타마모리는 웃었다. 간지럽다느니, 재밌다느니, 즐겁다느니.
문질문질 귀를 갖다댄다.
빈 손으로 내 허리를 끌어 안고 놓아주지 않는다.
나는 턱 아래에서 흔들리는 머리카락을 무의식 중에 쓸었다.
"……."
나는 무얼 하고 싶었던 걸까.
처음으로 싸움을 하고, 집을 뛰쳐 나와.
어디로 사라져버리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누군가의 관심을 사고 싶었던 게 아닐까?
어머니가 나를 찾아내준다면, 아버지 몫까지 혼내주시겠지.
첫째 누나가 나를 찾아내면 훨씬 더 혼날 것이다.
셋째 누나도 실은 온후한 편이 아니다.
그러니 타마모리가 찾아내줘서 다행이었다.
내게 집으로 돌아갈 이유를 만들어 주었다.
"타마모리, 이제 울지마."
***
"………?"
검은 색에서 흰색. 흰색에서 녹색으로.
시야가 움직이는 와중,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려온다.
하나자와. 그렇게 별명으로 나를 부르는 사람은 이 세상에 오직 하나뿐이다.
"타마모리……?"
내 품에 있어야할 타마모리가 나보다 높은 곳에서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
울지 말라고 했는데 아직도 눈이 부어있다.
"이봐…."
"하나자와!!"
부들부들 떠는 가 싶더니, 내게 매달리는 타마모리.
하지만 뭔가 이상하다. 손발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허리가 전혀 움직이지 않는데다, 시야가 흐릿했다.
"나는……."
무슨 일이 있었지? 당혹스럽다.
하지만 지금의 혼란을 전할 만한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쑥하니 사전에서 말이 빠져나가버린 듯했다.
"되살아 났구나…!"
"뭐, 뭐야."
좀전은 저녁이었는데, 지금은 무더운 여름이다.
꿈이었나…?
왜 지금 나팔꽃 꿈을 꾼걸까.
나는 냉정함을 되찾는 중이었으나, 타마모리는 엉엉 울고 있었다.
손끝에 천천히 힘을 넣어, 팔을 움직인다.
아직 일어날 순 없으나, 타마모리의 어깨를 잡아 내쪽으로 당겼다.
스스로도 눈물을 멈출 수 없는 걸까, 그의 눈물이 뚝뚝 내 얼굴에 떨어졌다.
"전부 내 잘못이야."
?"
"어제 낮에 먹은 뿌리에… 독이 있어서…."
어제? 뿌리? 독…?"
"그후로 네가 눈을 뜨지 않았어…."
"………."
확실히 타마모리가 만든 조림을 먹은 다음, 몸 상태가 나빠졌던 게 기억난다.
"그 뿌리를 캐냈을 때, 꽃 피어 있었어?"
"하얀 나팔꽃이 피어있었어…."
"!!"
"사실은 꽃만 딸 생각이었는데… 꽃이 갑자기 말을 걸어와서…."
"말을 걸어?"
"뿌리가 맛있으니까~ 먹어주세요~ 다 같이 맛나게 먹어요…했어."
"환각이야. 식사 전부터 미쳐있었을 줄이야….
"이, 이번의 이번의 이번의 이번이야말로 환각이 아니야…. 꿈도 아니라고!"
"………."
"그런 눈으로 보지 마…."
"환각이야."
"아니야! 진짜로 꽃의 정령이……."
"조선나팔꽃(흰독말풀)에는 환각 작용이 있어."
"조, 조선 나팔꽃…?"
"독초야. 그 작용 덕분에 마취에도 쓰이지. 옛날에 누나가 가르쳐줬어."
조선 나팔꽃(흰독말풀)이 일본에 보편적으로 분포하게 된 것은, 그 이름 그대로 수입된 꽃이 야생화되고 나서였다. 허나 그 이전의 세계인 이곳에 그런 것이 있다니…..
이 온난 기후가 꽃을 피우게 하여, 변동과 함께 생식지를 바꾸게 된 거겠지.
무시무시한 생명력을 지닌 생물이다. 수면, 환각, 최악의 경우엔 죽음….
"타, 타마모리!! 너는 아무렇지도 않았어?!"
"나는 괜찮아. 속이 튼튼해서."
"독이라고! 보통 일이 아니란 말이야~"
타마모리를 조사해야한다는 생각이 들자, 몸이 가벼워졌다.
몸을 일으키자, 자신이 옅은 물에 잠겨 있음을 깨달았다.
주위에 핀 꽃은 연꽃이다….
"죽은 줄 알았다구~"
"옛날이랑 똑같은 소릴 하네."
그보다.
타마모리의 배에 습진은 없을까. 입안이 짓무르진 않았을까.
몸을 만져본다. 지금 알 수 있는 것을 조사해봤으나, 이상은 보이지 않았다.
증상은 환각뿐인가…."
"그러니까 나는 아무래도 좋다고!"
어깨를 잡혀 다시 물속으로 쳐박힌다.
그리고 그대로 깊은 입맞춤을 받았다.
"그만…. 아직도 독이 남아있을지 모르는데…."
"죽을 거면 함께인게 좋아."
"!"
숨결 섞인 중얼거리에, 내가 하려던 말이 사라져버렸다.
그렇게 나를 진정시킨 다음, 타마모리는 꼬옥 내게 매달리고서 내 어깨 죽지에서 눈물 흘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