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Re;quartz/SS] Just another day - 後
발매일 : 2014년 3월 31일
참나, 별수 없기는.
모토이는 한숨을 쉬었다. 현관에서 발에 익은 스니커를 신은 다음, 신발끈을 묶는다.
「오빠. 즐거워 보이네.」
뒤에서 들려온 치토세의 목소리에 돌아본다. 어차피 레이토와의 대화는 듣고 있었을 거라 생각했으니, 치토세가 거기 있는 것은 별로 놀라울 것도 없다.
「내 어디가 즐거워 보이는 데?」
다만 놀란 것은 치토세의 말이다. 동생에게는 과장된 한숨 소리가 들리지 않았던 걸까? 동생은 뭐가 우스운지 쿡쿡 웃었다.
「평소처럼 즐거워 보여. 과연 이 마을의 형님이네.」
「아아…….」
돌아온 대답에 납득하고, 애매한 웃음으로 답한다. 이것은 좁은 커뮤니티 안에서 모두가 바라는 「모토이」를 존속시키기 위한 행위다. 오지랖넓은 오빠는 가출한 전학생이 있으면 바로바로 도우러 간다. 전학생의 동생한테 부탁받은 거라면 더 더욱.
「좀 전의 미즈카미 레이토 씨……. 전학 오고 나서 유즈키랑 굉장히 사이가 좋아.」
「헤에.」
유즈키에게 열을 올리고 있는 동생은 극비 사항이라도 전하는 듯이 소리 죽여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최근엔 학원에서 항상 둘이 있다던가. 오늘은 옆마을까지 둘이서 장을 보러 갔다던가…….
달리 아는 나오의 친구가 없기 때문이라며 현관 앞에 나타난 남자. 모토이는 레이토를 알고 있었다. 이야기를 나눠 본 적은 거의 없었으나, 마을이나 학원에서 몇 번 정도 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볼 때마다 레이토는 뭔가 말하고 싶어하는 표정으로 모토이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이상으로 나오를 보고 있었다. 모토이의 옆에 있는 나오는 별로 잘 모르는 것 같지만. 처음 만났을 때 나오를 바라보며 담담히 「형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하던 모습은 상당히 충격이었다.
「뭐냐, 그거…. 브라콤인가?」
피어나는 의문이 무심코 입 밖으로 새어 나왔다.
「에? 오빠는 시스콘이잖아.」
「아니거든.」
동생과 가벼운 농담을 나누며, 점퍼를 걸친다. 슬슬 초여름에 접어들 무렵이라곤 하나, 이 마을의 밤은 아직 춥다.
(뭐, 그쪽 사정은 아무래도 좋지만.)
첫 전학생인 나오를, 좀 더 알고 싶다. 그 기회가 온 거라고 생각하면 나오를 찾아내고픈 기력이 쑥 치솟는다.
이 마을의 인간관계를 일절 모르는, 바깥 세상에서 온 동급생. 나름 사이좋아 졌을 텐데도, 사고 패턴을 제대로 읽지 못하는 것도 신경 쓰인다.
「이럴 때는 득이네.」
「에?」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하는 여동생에게 손을 저어 대답한다.
이 마을의 형님이라는 포지션도 딱히 나쁘진 않다고 생각한다. 모두가 기대하는 역할을 착실히 연기해낼 때의 충실감이 좋았다. 그래. 좋아했다….
맨션 바깥 계단을 뛰쳐 내려간다. 발걸음은 가볍가. 여기서 보이는 풍경은, 태어났을 때부터 변한게 없다. 하지만 해를 거듭할 때마다, 성가신 부속품이 느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멋대로 기대하는 것도 곤란한데 말이지.)
그냥 좋으니까. 철들 무렵부터 자연히 요구 받은 거니까. 모두를 보살폈던 것 뿐이다. 단순한 선의로서 받아 들여 주면 좋을텐데. 남들은 멋대로 뭔가를 기대한다. 거기에, 그 이상의 무언가가 있는게 아닐까 하고.
특히 여자아이는 멋대로 연애 감정을 덧붙여 오니까 성가시다.
조금 돌봐 줬던 아이를 가볍게 찼다가, 심한 꼴을 당했던 것은 아직도 기억에 새롭다. 당분간은 그런 일, 사양이다.
특이한 전학생을 적극적으로 돌보고 있으면, 일단 고백 받는 것은 면할 수 있다.
나오를 보살피는 역할을 떠맡은 것은, 그런 이유도 있었다.
레이토의 말대로, 나오는 광장 구석에 있었다. 벤치에 앉는 것도, 걸어 다니는 것도 아니고, 그저 멍하니 서있었다.
「여어, 나오.」
가볍게 말을 걸자, 나오의 어깨가 움찔 떨렸다.
「모토이…….」
뒤돌아 모토이의 모습을 보고, 나오가 놀란 표정을 짓는다. 시간은 이미 오후 11시를 지나 있었다. 이유도 없이 나다닐 시간대는 아니다.
「조깅 중이였어.」
점퍼를 팔락팔락 흔들며, 의문에 대답한다.
「그러다가 방금 우연히 레이토를 만났는데.」
「!」
나오가 움찔하는 표정을 짓는다. 역시 레이토와 싸우고 가출한 모양이다.
「들었어…?」
「들었어.」
겸연쩍은 듯 고개 숙이는 나오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고, 웃어 보인다. 나오도 풀죽어 있는 모양이지만, 모먕새만 보면 레이토 쪽이 더 위험하다. 그 녀석은 형을 유리 세공품 같은 걸로 착각하고 있는 건지, 망가트리는 것이 무서운 것처럼 결코 깊이 들어서려 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내가 망가트리는 걸 바라는 걸려나.)
그런 성가신 일, 지금은 할 기분도 안 들지만. 일단, 레이토와 나오가 화해하는 것이 우선이다.
「그럼 너희 집으로 갈래? 레이토도 걱정했던 것 같아.」
나오의 어깨에 팔을 둘러, 가벼운 몸을 끌어 안는다. 이대로 미즈카미의 집까지 나오를 바래다 주고서, 레이토와 나오 두 사람을 가볍게 달랜 다음 화해시키면 형님의 일은 끝.
「갈까.」
평상시, 남들에게 하는 것과 완전히 같은 동작으로 어깨를 민다. 나오는 움직이지 않았다. 멍청한 눈으로 모토이를 올려다본다.
「나오?」
당황해 이름을 부르자, 나오는 살짝 고개를 갸웃한다.
「모토이도 같이 가게?」
「에…….」
이 상황 하에선 안 가는게 더 이상하잖아. 그런 말은 집어 삼킨다.
나오는 역시 모토이를 의식하지 않는다. 정말로, 단순한 친구 하나로 본다. 그걸 알자……, 순간 나오가 자신을 기대주길 바라게 된다.
「싸운 다음이고. 돌아가기 힘들지 않아? 나랑 얘기했던 걸로 치는 게 어때?」
이럴 때, 남들이 바라는 일은 대개 마찬가지. 적극적으로 책임을 짊어지고, 상대의 부담을 가볍게 하는 것. 지금까지 모두가 모토이에게 바래왔던 것이며, 모토이 역시 그에 응해 왔었다.
「………?」
나오는 모토이의 얼굴을 보고, 몇 번씩 눈을 깜짝인다. 어쩌면 나오는 이러한 선의를 접하는 것이 처음인 걸지도 모른다.
「레이토한테 혼나면 말야. 내가 붙잡아서 그런거라고 말해.」
「마음대로.」
「에?」
잘못 들은 건가 싶어, 반사적으로 되묻는다. 나오는 다시 한 번, 천천히 입을 열었다.
「모토이 마음대로 해.」
「나도 같이 가면 나오가 더 더 편하지 않을까 싶어서.」
「? 아무래도 좋아.」
나오는 모토이의 의도를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다시 한 번 고개를 갸웃한다. 내 마음대로 하라니. 뭐냐. 모토이는 레이토의 부탁을 받아, 여기로 왔다. 나는 두 사람이 화해할 수 있도록 협력하려 하고 있다. 하지만 나오는 자신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집으로 돌아가서, 레이토랑 단 둘이라도 괜찮아?」
「원래부터 둘이서 살고 있는 걸.」
「하하…….」
나오의 말에 쓴웃음이 새어나온다. 나오가 말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며, 극히 상식적이다. 나오와 레이토의 일이니까, 둘이서 해결한다. 모토이가 거기에 끼어 드는 게 이상하다. 하지만, 그런 당연한 소리를, 누구 하나 모토이에게 말한 적 없었다.
(이 녀석의 아무래도 좋다는 말에, 구원 받은 기분이라니…. 나도 참……)
선택의 자유를 받은 것 뿐인데, 이렇게나 동요하다니. 이 마을의 형님이란 포지션도 마침내 밑천이 바닥을 보인 모양이다. 그것도 고작 몇 개월 동안 알고 지낸 녀석 앞에서.
「모토이?」
혼자 쓰게 웃는 모토이를 보고, 나오는 기이한 듯 말을 건다.
「응…. 아무 것도 아냐. 나, 나오가 신경 쓰여.」
그러면, 이제. 이 전학생 앞에서만큼은, 단순한 아사쿠라 모토이로 있고 싶다.
「엣?」
「아니. 지금이야. 지금 막 신경 쓰이기 시작했어.」
웃으며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고하자, 나오는 놀라 멍청한 표정으로 모토이를 바라본다.
「어디가……?」
「나한테 기대하지 않는 점이.」
「……….」
나오의 입술이 몇 번 움직였으나, 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이해 받지 못해서 다행이다. 다만 평소엔 허공만 보고 있는 주제에, 지금은 모토이한테서 눈을 때지 않는 것이 묘하게 교활하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마음이 새어버릴 것 같아서, 왠지 분하다.
「그럼……, 나도 같이 가도 돼?」
방금 만났던 레이토도 걱정 되니까 다시 한 번 보고 싶다. 그렇게 말하자, 나오는 바로 웃는다.
「레이토를 신경써 주다니, 고마워.」
나는 너를 신경 쓰고 싶은데 말이야. 서로 브라콤인거냐, 이 형제는.
(아니. 브라콤이라기보다는 좀 더 뭔가……. 뭔가가, 다른 종류의…….)
딱하고 와닿는 답을 찾아내지 못해서, 귀찮음에 생각을 관둔다. 그렇지. 원래는 타인의 심정을 헤아리는 것이 거북했다. 남들이 역할을 주기에, 그런 식으로 연기해 온 것뿐이다.
남들이 멋대로 기대하는 것을 귀찮다고 생각했다. 물론, 지금도 귀찮다고 생각 중이다. 하지만 지금은, 자신이 멋대로 기대하고 말았다. 정말로 자신에 대한 흥미가 0이라면, 그런 식으로 말하지 않는 거 아닌가? 제로가 아니니까, 받아 들여 주는 거 아닌가?
「아…. 진짜 귀찮네.」
「응?」
「이쪽 이야기.」
자신이 이제까지 질색하고 있던 녀석들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 단순한 선의였던 선행이, 자신의 호의를, 점점 더 알 수 없게 된다. 탁해져간다. 밤바람이 묘하게 차갑게 느껴져서, 나오가 춥지 않을지 멋대로 걱정 되었다.
나오의 보폭에 맞춰, 둘이 천천히 언덕길을 내려간다. 바다와 산 사이에 있는 이 마을은, 언덕이 많다. 흔들흔들 걸어가는 나오가 넘어지면 붙잡아 줄 생각이었지만, 그럴 기회는 오지 않았다. 언덕 중반부에 도달하자, 점차 형제가 사는 집이 보였다. 나오가 작게 숨을 들이킨다.
「레이토를 보는 거, 긴장 돼?」
「어쨌든……, 보지 않으면 안 되니까.」
나오는 몇 번 심호흡을 거듭했다.
「미룰 수도 있잖아. 우리 집에서 자고 갈래?」
「됐어…. 돌아갈래.」
나오의 시선이 조금 흔들렸다. 이 주저함은 편한 길을 눈 앞에 둔 망설임에 불과한 거겠지. 지금의 모토이는, 나오의 마음을 받쳐 줄 수 없다.
(하지만 고민은 해 주는 거구나.)
지금은 그것만으로도 좋았다. 머잖아, 나오가 자신에게 기울어질 기회도 분명 돌아 온다. 그때까지 자신은, 이 자기만의 감정에 만족하자. 자신에게 새로운 감정이 싹튼 것이 기쁘다.
「모토이는 특이하구나…….」
「엣? 네가 그런 소릴 해?」
「피차 일반이네.」
고개 숙여 조용히 웃는 나오를, 솔직하게 예쁘다고 생각했다. 누구에게도 기대하지 않는 나오가, 뭔가를 요구하는 날은 있을까?
「아….」
점퍼를 걷어, 손목 시계를 확인한다. 시간은 0시를 지나 있었다.
「레이토의 특권. 내가 받았네.」
「특권?」
손목 시계가 잘 보이도록, 나오의 눈 앞에 손목을 내민다.
「나오. 오늘 하루도 잘 부탁해.」
눈 앞에서 방긋 웃어 보이자, 나오도 절로 작게 웃는다.
「응…. 잘 부탁해.」
나오가 뭔가를 요구할 때는, 틀림없이 뭔가가 망가지는 날이겠지.
그야말로 유리 세공처럼. 결코 원래대로 돌아가진 않을 것이다. 왠지 모르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심호흡 한 다음, 나오가 현관 문을 두드렸다. 잠시 지나, 레이토가 문을 열었다.
「………」
「………」
괜찮은건가, 이 녀석들. 미즈카미 형제는 서로를 바라본 채,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냥 있기만 할 생각이었던 모토이였지만, 아무래도 뭔가 말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저기 말야, 레이토….」
「모토이 씨.」
갑자기 레이토가 모토이에게로 돌아선다.
「나오를 데려다 주셔서, 고맙습니다.」
「응. 딱히 상관은 없지만….」
그렇게 감사하면서, 그렇게 쏘아보는 눈으로 보지 말라구.
그렇게 지금 상황이 괴롭다면, 레이토 자신이 깨부수면 좋을 텐데.
(뭐…, 굳이 그런 소린 안 하겠지만.)
웃음을 띠우고, 두 사람에게 손을 흔든다.
「나오. 오늘도 학교에서 봐.」
「모토이. 고마워.」
나오의 웃음을 머리에 새기고, 빙글 뒤돌아선다. 자신의 귀로에 들어서는 모토이는, 더 이상 뒤돌아보지 않는다. 성가신 자신을 자각했지만, 역으로 발걸음이 가벼워진 기분이 든다.
(다른 누군가가 망가트리려 든다면, 무조건 내가 망가트리자.)
그런 날이 바로 올거라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다. 하지만, 언젠가.
나오가 뭔가를 요구하는, 그 때가 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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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험판만 해보면 헤타레 기믹인데 사실은 위선자였던 'ㄱ' 모토이...